한줄 詩

플라스틱 사랑 - 강윤후

마루안 2018. 5. 27. 19:05



플라스틱 사랑 - 강윤후



단단한 사랑
질긴 사랑
미끈한 사랑
번쩍대는 사랑
변치 않을 사랑
썩지 않을 사랑
품질 보증 사랑
한 번 붙으면 지글지글 불타오를 사랑
그러다 감쪽같이 사그라들 사랑
아무데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사랑
다시 바꿀 수 있는
플라토닉, 아니
플라스틱
플라스틱 그 사랑



*시집, 다시 쓸쓸한 날에, 문학과지성








빗길 - 강윤후



그리움이 깊어지기 위하여 비는 내리는가
비가 내리면 새들도 갈 곳 모르는데
기억은 못이 툭툭 빠져 물 위를 흐르고
높아서 흐려지는 고층의 창들
사람들 사이가 젖어 흔들려도
더 멀리 가는 길은 서슴없이 밝아져 아득하고
잎 떨어진 가지 끝에 침묵이 굳기까지
완고한 그림자 위태롭게 걸려 나부끼리니
무심히 흘린 발자국에 쫓기며
비가 멎는 곳까지 걸으면
뒤늦어 소문뿐인 그대 기다림
맑은 햇살에 잠겨 먼지처럼 흩날리며
내 기약 없이 떠돈 그 많은 날들
다 용서해줄 텐가
눈부신 현기증에 고단한 내 젖은 옷
또 하나의 기다림으로 증발할 텐가 그러나
나는 아직 좁은 어둠으로 우산 받쳐든 채
빗속에 갇혀 있고
미아처럼 방황하는 세상의 다른 길들
포개지며 묽어져 정녕
길을 묻지 않는 자의 정처를 지워버리기 위하여
비는 내리는가
비가 내리면 흔들림은 깊어져
기억의 저지대가 끝내 침수되고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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