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 새는 어디로 갔을까 - 이강산

마루안 2018. 5. 26. 23:15

 

 

그 새는 어디로 갔을까 - 이강산


그 새는
국립대전현충원 제15묘 육군하사 서격춘의 묘와
육군상병 서한원의 묘 사이로 내려앉았다
폭설에 간신히 발목만 파묻힌 채

어디로 갈 것인가
두어 번 방향을 바꾸며 두리번거리던 그 새는
해군상병 연준모의 묘를 향해 뒤뚱뒤뚱 걷다가
푸드득 눈을 털고 날아올랐다

얼어붙은 주검과 주검 사이 내려앉은
그 새는
이만 개의 화강암 비석을 숲으로 여겼을까
폭설 속 저 붉고 푸른 이만 개 원색의 조화(造花)가 꽃인 줄 알았을까

새의 무게만으로도 저렇듯 선명한 발자국을 본다
십 년 전의 추억과 일 년 전의 추억 사이에
떠난 사람과 돌아온 사람 사이에 내려앉아 뒤뚱거리는
나는 어떤 발자국을 남길까
어디쯤에서 날아올라야 하는 걸까

어디선가 이명처럼 새가 울고
새 울음 내려앉는 비석들 사이
얼어붙은 발자국
그 새는
어디로 갔을까

 

 

*시집, 물속의 발자국, 문학과경계

 

 

 

 

 

 

알전구 - 이강산


밤마다 15촉 불빛 아래 신기하게도 양말 뒷굽을 기워내는 알전구를 기다린 게 아니었다 나는 또 어머니의 배 위에서 한참씩 요동치는 엉덩이를 훔쳐보려던 것이었다 방패연 댓살 훔치다 귀때기 새파란 놈 어쩌고 얻어터지던 시절 눈 내리고, 파랗게 멍든 살빛의 어둠이 봉창에 잦아들면 어머니는 종종 미끈한 알전구를 열두 살짜리 코앞에 흔들며 그저 귀때기 새파란 놈들이 잠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 시절 어머니가 소유한 삶의 그릇이란 게 간장종지 만한 단 칸 방이었기에 알전구와 엉덩이를 동시에 보기도 하였지만 꼭 그 시절의 어머니만큼 세월과 아이들을 불려놓은 지금, 때때로 방바닥의 세 아이들 머리맡에 엉덩이를 돌린 채 엉금썰썰 아내 위로 오를 때마다 나는 무슨 속죄를 하듯 건넌방 늙은 어머니의 알전구와 그 곁의 엉덩이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시인의 말

 

(.....)

누군가 다른 사람의 그림자를 발끝에 매달아놓은 것처럼 언제나 낯설기만 한 나의 그림자. 나를 가장 닮은 듯한 그림자를 좇아 먼 길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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