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백년을 그리다 - 윤범모

마루안 2018. 5. 24. 19:54

 

 

 

미술사학자 윤범모가 한겨레에 연재했던 현역 화가 김병기 선생의 구술 인터뷰를 정리한 책이다. 나는 이전까지 김병기 선생을 몰랐다. 김병기 화백이 이중섭의 친구였다는 것도 이 책을 읽고야 알았다. 현재 나이 102세로 아직도 그림을 그리고 있다.

피카소도 90살까지 그림을 그렸다지만 김병기 선생은 100살을 넘긴 현역 화가다. 내가 한국 미술계 역사를 꿰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그리 유명 화가는 아니라는 얘기도 된다.

이 책에도 언급하지만 김병기 화백은 이중섭, 박수근, 이쾌대, 김환기 등 한국 미단의 쟁쟁한 미술인과 인연이 깊은 분이다. 어쨌든 이 책으로 인해 지나온 한국 미술사를 알게 되었다. 은둔의 나라였던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새로운 학문이 들어왔고 해방과 함께 분단이 되면서 엄청난 변혁을 겪게 된다.

해방 이후 친일파와 독립운동파가 갈려 갈등을 벌이다가 분단과 한국전쟁 이후 또다시 좌익과 우익으로 갈려 피터지는 싸움을 하게 된다. 실로 이런 역사로 인해 우리가 입은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예술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분단으로 입은 손실은 물론 공산 치하와 독재 정권 아래 남북의 예술계는 엄청난 손실과 후퇴를 가져온다.

가령 시인 윤동주가 해방 전에 요절하지 않고 살아서 북쪽에 자리를 잡았다면 민족 시인으로 불릴 수 있었을까. 아마 백석이나 정지용처럼 금서로 묶여 오랜 기간 우리는 윤동주를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학교 다닐 때 윤동주는 교과서에 나오는 시인이었지만 내가 백석이나 정지용 작품을 읽을 것은 80년대 후반이다.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은 또 어떤가.

이 책에도 김병기 선생이 거쳐온 길에 숱한 인물들이 남과 북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야 분단놀음으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예술가는 분단으로 인해 상처 받고 예술은 후퇴를 했다.

피카소가 <한국에서의 학살>이란 작품을 그렸고 한때 공산당원이었다는 이유로 박정희 정부는 난데없이 1969년 피카소라는 이름을 반공법으로 금지했다. 피카소 그림이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당시 피카소라는 상표의 크레파스 회사는 망했다고 한다.

일본에 나라를 빼았긴 몇 년 후인 1916년 평양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김병기 선생은 화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그림에 눈을 뜨게 된다. 김병기 화백의 아버지 김찬영은 김동인 김억 등과 일제 치하 평양에서 문예지를 함께 만들 정도로 문인 및 여러 예술계 인물들과 친분이 돈독한 화가였다.

그런 아버지의 후원 덕에 김병기는 일본 유학길에 오르고 거기서 이중섭과 함께 미술 공부를 한다. 김병기와 이중섭은 같은 평양 출신으로 평양 종로보통학교 동창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가지 못하는 땅이지만 당시의 평양은 서울보다 훨씬 진보적인 도시로 숱한 예술가를 배출했고 한국 예술계의 거장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대도시였다.

이중섭은 죽은 지가 60년이 넘었으나 그의 절친은 아직 살아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한 인간의 일생을 통해 한국문화사를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책에도 김병기 화백의 그림이 여럿 실렸지만 대부분 추상화다. 나는 김병기 선생의 작품을 직접 전시관에서 관람한 적은 없다. 조만간 전시회가 열린다고 하니 꼭 가볼려고 한다.

특히 백살이 넘은 나이에 아직도 현역 화가로 활동한다는 것이 놀랍다. 김병기 선생은 북한, 일본, 남한, 미국, 프랑스 등 여러 지역을 디아스포라로 떠돈 분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공산 치하를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와 정착한 이후 마흔 아홉 되던 해 돌연 미국에 머물게 된다.

조용히 잊혀지던 김병기 화백은 20년 만의 귀국전 이후 이제 영구 귀국을 해서 서울에 머물며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누가 인생을 연극이라 했던가. 아마 김병기 선생의 인생을 무대에 올린다면 대하소설 못지 않을 것이다. 우주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어도 한 사람의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좋은 책이다. 한국문화 변천사 제대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