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 - 오찬호

마루안 2018. 5. 20. 21:47

 

 

 

제목부터 참 도발적이다. 태어나자마자 속았다니 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경쟁에서 살아 남는 처세술을 위한 책인데 하도 많은 책이 경쟁을 하니까 제목으로라도 한번 낚아보려는 출판사의 속셈이었을까. 제목의 첫 인상은 이랬다.

<의심 많은 사람을 위한 생애 첫 번째 사회학>이라는 부제는 눈길을 끈다. 요즘 출판계가 너도 나도 무슨무슨 학 등 학자를 붙여서 제목 정하기가 유행이다. 적당히 안전빵으로 묻어 가기 좋기 때문일까. 어쨌든 이 책은 사회학 책이다.

보통 이런 책이 딱딱하고 지루하다. 저자는 온갖 지식을 다 늘어놓고 독자는 읽으면서 앞의 내용을 잊어가면서 읽기도 한다. 다 읽고 나서 그냥 좋은 얘기 같기는 한데 뭘 말하려는 거지? 뭐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래도 무식하단 소리 들을까봐 적당히 이해한 척 해야 한다.

이 책은 그럴 필요가 없다. 일단 읽기 시작하면 흥미로운 내용 때문에 단숨에 읽게 된다. 무심코 지나쳤던 사회 현상이나 딱 꼬집어 설명하기 막연했던 것들이 확연히 그려진다. 아, 그렇구나, 아, 그랬구나,, 사회과학이란 학문이 엄청 대단하고 심오할 것 같은데 이 책은 그런 공포심(?)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왜 인문과학이니 사회과학이니 과학을 붙여 부르는 이유를 아주 쉬운 설명으로 이해시킨다.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여성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내 여자 조카에게 추천해야지,, 그만큼 쉽고 부드럽게 생활과 밀착된 사회학을 설명한다.

학자는 자기 좋아 연구만 할 게 아니라 자신이 습득하고 정립한 연구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그중 가장 무난한 것이 책을 내서 독자와 만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찬호의 이 책은 사회학 입문서라 해도 되겠다. 고등학교 졸업 정도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내용이 아주 쉽고 명료하게 실렸다.

어렵게 쓴 책일수록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쓴 책일까. 내 경우 몇 줄 읽다가 질겁을 하고 내려 놓은 책이 많았기에 하는 소리다. 그런 책을 억지로 읽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몸에 좋다고 맛 없는 음식을 참고 먹는데는 한계가 있다. 책도 그것과 같다.

누구나 부모의 피와 살로 세상에 나오지만 물려 받은 유전자로만 살 수는 없다. 학교와 사회에서 서로 부대끼면서 사회 규범을 배운다. 술에 취하면 하루 지나 자연히 깨지만 자신도 모르게 굳어진 틀은 깨기 위한 자극제가 필요하다. 오찬호의 책은 틀을 깨는 각성제다. 사회 과학적 소양은 저절로 습득 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이런 구절을 남겼다. <멋지게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걸까? 나 스스로가 인간임을 자각하고, 인간만이 갖고 있는 이성의 힘을 바탕으로 어떻게든 올바른 사회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 이보다 더 멋진 삶이 있을까? 이제 우리에게는 '절망 다음은 희망'이라는 것을 증명할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