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어느날 마포에서 - 이상국

마루안 2018. 5. 14. 22:25



어느날 마포에서 - 이상국



커피점에서 아들을 기다리는데


티브이에서 어느 자동차 공장의 노동자가 또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는 뉴스가 나온다


죽은 노동자는 기차처럼 젊었다


우리는 모두 살기 위하여 일하지만
일을 위하여
사는 걸 버리는 사람들이 있고


먹어야 얼마나 먹는다고
입을 위하여
몸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이 스물몇번째라는데
어딘가에서
계속 밧줄을 걸어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죽으면 라면도 못 먹는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죽음은 남의 일이고
커피 향이 허기처럼 스며드는 저녁


휴가 나오는 아들과 나는 한끼 밥을 찾아
저 거리로 나설 것이다



*시집, 달은 아직 그 달이다, 창비








봄밤 - 이상국



나보다 늦게 들어온 환자는 저녁이 되자
핸드폰 영상 통화로 목사님을 불러 예배를 본다


저 꼭대기에 누가 있긴 있는지,


내일은 위(胃) 속의 버짐 같은 걸 지져낸다고
밥 대신 링거를 꽂고 몸에 물을 주는데


앞 병상의 늙은 아들이
더 늙은 아버지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엉덩이를 똑바로 들고 있으라고
호소한다
명령한다
그러다가
아버지 제발 좀 징징거리지 말라고
자식처럼 타이른다


어느덧 그 아들이 나이고
그 아버지도 나였다


그동안 몸을 그렇게 위했는데
여기서는 모든 몸이 남이다


밤이 깊자
예수 믿는 사람도 칸막이 안에서 죽은 듯 조용하고
아들도 아버지 병상 옆에 누웠다


나도 더는 갈 데가 없어
병상 위에 내가 든 몸을 눕히고
한방울 두방울 절벽을 뛰어내리는 수액을 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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