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지에 와서 - 김태완
중림동 사람들은 가슴에 상처를 입어
고통이 뭔지 알고 있다
거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중림동이 고향이 아니다
서울의 중심지
서울역이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중림동은
유난히 허허로운 얼굴로
배고프게 들어선 입간판들로
천자만별의 모습이다
사람들이 떠나고 새 사람이 와도
반가움이 없는 멋적은 타향
중림동 사람들은 늘
언제 떠날까를 잊지 않는다
고통스러우면 언제고
기차표를 끊는다
벌써 10년째 함바집을 하는 청양집 아줌마
지지리도 못생긴 채로
암팡지게 설거지하는 팔뚝 너머로 묻는다
"언제까지 있을 거유?"
*시집, 추억 속의 겨울은 춥지 않다, 오늘의문학사
돈을 세면서 - 김태완
돈을 세면서
남의 돈을 세면서
세종대왕이 훌륭한 분이라는 걸
분명히 깨달았지
돈을 세면서
생선 비린내가 나면
좌판 생선가게
최씨 아저씨 돈이란 걸
밀가루 반죽이 덕지덕지 묻어 있으면
호떡 파는
오씨 아줌마 돈이란 걸
구두약이 묻어 들어온 돈은
이씨 아저씨네 구두통 속에서
한 나절 보내고 들어온 돈이란 걸
돈을 세면서
아직도 이런 돈을 셀 수 있어서
세종대왕이 훌륭한 분이란 걸
분명히 깨달았지
돈 같은 돈을 세면서
행복이란 걸 느껴 보았지
*서시
1.
앉아서 기다리기엔
살아 있는 날이 너무 짧다
아직 만나지 못해
슬픔으로 남아 있는 기다림
그것은 이미
멀리서 넘실거리는 썰물이다
떠나면 그뿐
돌아올 날 기다리자니
살아 있는 날이 너무 짧구나
2.
일그러진 바다가
화폭 속에서 출렁인다
바람이 덩달아 춤을 춘다
상념의 바다는
어깨를 다독이며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오로지 사랑하라 한다
밀려갔다 밀려오는 파도
더 이상 말을 잃은 바다는
기어이 나를 버린다
나를 삼켜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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