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객지에 와서 - 김태완

마루안 2018. 5. 14. 22:11

 

 

객지에 와서 - 김태완

 

 

중림동 사람들은 가슴에 상처를 입어

고통이 뭔지 알고 있다

거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중림동이 고향이 아니다

서울의 중심지

서울역이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중림동은

유난히 허허로운 얼굴로

배고프게 들어선 입간판들로

천자만별의 모습이다

사람들이 떠나고 새 사람이 와도

반가움이 없는 멋적은 타향

중림동 사람들은 늘

언제 떠날까를 잊지 않는다

고통스러우면 언제고

기차표를 끊는다

벌써 10년째 함바집을 하는 청양집 아줌마

지지리도 못생긴 채로

암팡지게 설거지하는 팔뚝 너머로 묻는다

"언제까지 있을 거유?"

 

 

*시집, 추억 속의 겨울은 춥지 않다, 오늘의문학사

 

 

 

 

 

 

돈을 세면서 - 김태완

 

 

돈을 세면서

남의 돈을 세면서

세종대왕이 훌륭한 분이라는 걸

분명히 깨달았지

 

돈을 세면서

생선 비린내가 나면

좌판 생선가게

최씨 아저씨 돈이란 걸

밀가루 반죽이 덕지덕지 묻어 있으면

호떡 파는

오씨 아줌마 돈이란 걸

구두약이 묻어 들어온 돈은

이씨 아저씨네 구두통 속에서

한 나절 보내고 들어온 돈이란 걸

 

돈을 세면서

아직도 이런 돈을 셀 수 있어서

세종대왕이 훌륭한 분이란 걸

분명히 깨달았지

 

돈 같은 돈을 세면서

행복이란 걸 느껴 보았지

 

 

 

 

*서시

 

1.

앉아서 기다리기엔

살아 있는 날이 너무 짧다

아직 만나지 못해

슬픔으로 남아 있는 기다림

그것은 이미

멀리서 넘실거리는 썰물이다

떠나면 그뿐

돌아올 날 기다리자니

살아 있는 날이 너무 짧구나

 

2.

일그러진 바다가

화폭 속에서 출렁인다

바람이 덩달아 춤을 춘다

상념의 바다는

어깨를 다독이며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오로지 사랑하라 한다

밀려갔다 밀려오는 파도

더 이상 말을 잃은 바다는

기어이 나를 버린다

나를 삼켜 버린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날 마포에서 - 이상국  (0) 2018.05.14
한 군더더기에 대하여 - 유병근  (0) 2018.05.14
한 죽음을 기울이다 - 김창균  (0) 2018.05.14
햇빛의 구멍 - 김점용  (0) 2018.05.14
어떤 개인 날 - 서규정  (0) 2018.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