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한 죽음을 기울이다 - 김창균

마루안 2018. 5. 14. 22:08



한 죽음을 기울이다 - 김창균



재래시장 골목,

플라스틱 다라이에 반쯤 담긴 미꾸라지

개중 몇 마리는 있는 힘 다해 공중을 솟구치다

맨바닥 쪽으로 떨어진다

자기의 몸을 버리는 순간이다

목을 매지도 않고, 단지 정지될 몸을 거부하는 것이다

하여, 죽음 쪽으로 굳이 안간힘을 기울이는 저 전폭적 행동을

나는 물끄러미 본다, 보기만 한다

지금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허리에 유난히 힘을 주고 숨을 속으로 가두며

제 몸 둥글게 말아 마침내 자신을 정지시키는 처절함


내 허리 부근에 뻐근한 것들이 모인다

어젠가 그녀가 떠나고 냄새만,

지독한 냄새만 남아 오래 떠돌던 날의 기억이

문을 닫고 골목을 나가는 늙은 그녀들 뒤를 따라 나간다

그 골목 끝에선

때마침 지나가던 구름이

찢어놓았던 자신의 몸을 다시 붙이며

북북...북북...

서쪽으로 서쪽으로 급하게 몰려간다



*시집, 마당에 징검돌을 놓다, 문학의전당








독거의 방 - 김창균



아버지가 물려준 벽걸이용 시계는 내 나이보다 많아

한 번도 시침과 분침이 겹치지 못한다.

아니 겹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과 잊히는 것들

서로가 제 갈 길로 가는 시침과 분침이여

저들도 한때는 서로를 밀고 밀며 고단함을 위로했을 터


미숙한 의사가 꿰맨 수술 자국 같은 흉터들이 떠도는 방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누워 시계의 수명을 세어보니

내가 사랑했던 것들은 소멸 쪽으로 기운 지 오래되었고

어둠이 걷는 바깥은 참으로 차고 딱딱하구나


가끔 눈을 닦고 벽과 마주하던 벽지도 어느새 주름이 늘었고

나는 오랫동안 먼지 쌓인 모서리의 통곡을 외면하였구나

분침을 외면하는 시침이여

관절염을 앓는 밥상이여

어긋난 것들의 간격 위에서 번식하는 거미줄과

몸의 안쪽으로 페달을 밟는 비명들이여

끝내 나는 아무리 문을 닫아도 새어 들어오는 바깥의

바깥이 되고야 마네






*시인의 말


지천명을 넘었다.

중언부언하는 날이 잦고

떨림은 미약해진다.

멋쩍게 받아놓은 저녁이 빨리 저물어

밤하늘을 일찌감치 받아놓았으나

혀는 굳고 눈은 어둡다.


겨울이면 더 북쪽으로 치우치는 몸과 생각들

그 몸과 생각과 생선비늘과 언 손을 연민하며

다시 너에게 나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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