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낯선 혹은 익숙한 - 서동균

마루안 2018. 5. 12. 18:33



낯선 혹은 익숙한 - 서동균



거리를 걷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익숙함이 강렬한 경계에 내려
무작정 걷는 거야
왠지 여자가 다가오면
어깨에 부쩍 힘이 들어가고
한동안 없었던 생물학적 충동에 대한
은근한 기대 아니면 기억
그녀가 있는 거리만큼 쏟아내지
마조히즘이나 사디즘에 대한
잔존하지 않는 향수는
낯설지도 익숙하지도 않지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행인과 심하게 부딪히는 것이
대열을 이탈한 개미처럼 잊히는
상상인지 모르지
철공소 담벼락에 버려진 철판에
밤이 빨갛게 찢어지고
문득 스치는 망각의 사이가
낯선 혹은 익숙한



*시집, 뉴로얄사우나, 파란출판








뉴로얄사우나 - 서동균



삼십여 년 전 아버지를 따라
빨간색 페인트로 나무 간판을 쓴
남탕에 처음 갔다
아마 부산에서였을 거다
경상도 사투리만큼 억센 때수건으로
온몸 구석구석을 한 번에 쭉
밀어 주었고
목욕이 끝나면
따뜻한 병우유를 사 주었다


오 년 동안
담도암으로 투병 중인 아버지하고
빨간색 네온간판이 반짝이는
뉴로얄사우나에 갔다
뼈마디가 앙상한 손, 발, 다리
그리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을
초록색 때수건으로 밀어 드렸다


아버지 몸에 핀 검푸른 주름꽃이
단단한 가슴으로 선로를 받쳐 들고
끝내 바닥이 되어 버린
묵묵한 침목(枕木)으로 남아 있다





# 서동균 시인은 1970년 서울 출생으로 성균관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2011년 계간 <시안> 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뉴로얄사우나>가 첫 시집이다. 한국금융연수원에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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