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늦은 봄비 - 서범석

마루안 2018. 5. 9. 11:48



늦은 봄비 - 서범석



꽃 진 자리다
머물던 욕망도 하늘을 놓는다
울음을 길게 조이던 새가
헤매던 숲길을 떠났다
뜻 모를 책 속에 피던 사랑도
함초롬히 젖은 손을 곱게 턴다
약속처럼 차곡차곡 쌓이던 나이도
조용한 아침을 깨우는 악보일 뿐
가고 또 오던
봄도 가을도
한낱 흩어지는 소리일 뿐



*시집, 종이 없는 벽지, 푸른사상사







그릇 - 서범석



보자마자 내 것이었다
무엇을 담을 것인지
무엇을 담을 수 있을 것인지
헤아릴 필요가 없었다


서로의 빈터에 서로를 채우고 싶은
공간 하나씩만 가지고 있는
테두리가 전부인
단순하고 매끄러운 몸
손이 없어도 말이 없어도
기쁨은 늘 눈 속에 가득 찼다


비가 내리던 날
내가 그 속에 들어가도, 내 가슴이
그가 내 속에 들어와도, 그 가슴이
빗물이나 담는 헛간임을 알았다


빈 가슴으로
빈 가슴이나 그리워하는






# 서범석 시인은 충북 충주 출생으로 건국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7년 <시와의식> 신인문학상 평로부문에 1995년 <시와시학>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풍경화 다섯>, <휩풀>, <종이 없는 벽지>, <하느님의 카메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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