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우울한 병동 2 - 김이하
사랑한다, 그 말은 오래 전에
너에게 했던 것, 보내 버렸던 것
내 가슴의 분화구엔 눈물이 고이고
싸늘히 식어 갔다, 그러나 그 사랑과 함께
나는 살아왔다
사랑한다, 그 말을 하기 위해
살아 있는 아침에 눈뜬 건 아니었지만
결국 그 사랑으로 입을 헹구고
가슴 뿌듯하게 그 기억을 챙겨 넣고야
밥 버는 길을 나서곤 했다
길을 가면서도
어딘가에 접어 둔 그 기억을 찾으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고
아, 사랑한다....
그 속삭임에 귀 기울이며, 나는
주머니 안쪽에 웅크리고 앉은 성냥갑에서
온전한 하나의 불꽃을 찾고
사랑한다, 그 말은 오래 전에
네 가슴을 찾아갔던 것
그러나 돌아오지 않는 사랑을 찾아
쏟아지는 잠을 퍼내고
눈 발갛게 새벽을 맞는다, 아프다
다시 세상 속으로 미끄러지면서
두리번거려야 할 생애가
날마다 등뼈 하나씩 찾고 있다
*시집, 타박타박. 새미
사랑, 우울한 병동 7 - 김이하
기만이다
이제 그대가 내 곁에 머무는 줄 알지만
순간을 이겨 보려는 허망한 소리들
쓸데없다, 동굴에서 열차가 들어온다
팔뚝의 잔털이 부르르 떨고
그대들 간다, 기만이다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내 숨소리 부드럽고 따뜻한 지금
나는 안다, 모과 익어 가는 공원의 한때
블랙 커피에 쓴 입맛을 다시며
그대를 생각하면
발그레한 빛으로 물드는 모과 껍질에
무어라고 쓰고 싶은 마음에
홀로 몸 붉히는
정욕의 좆대가리 같은 햇살
안산 쪽으로 기운다
인왕산 산머리가 붉다
어느덧 머리는 햇살을 따라가다 멎고
똥 누는 자세로 앉아
말갛게 피워 올리는 담배 연기
사라진다, 기만의 몸짓처럼
아름답다고 느꼈을 때
이윽고 사라지는 그대들 뒷모습
그립다
# 김이하 시인은 1959년 전북 진안 출생으로 1989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내 가슴에서 날아간 UFO>, <타박타박>, <춘정, 火>, <눈물에 금이 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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