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당신들이 꽃이에요 - 문성해

마루안 2018. 5. 1. 19:56



당신들이 꽃이에요 - 문성해



땡볕에 오글오글 쪼그리고 앉은 저 여인들
며칠 뒤면 시작되는 꽃 축제로 급하게 투입된 저 꽃들
호미와 모종삽을 든 꽃
저린 다리를 수시로 접었다 폈다 하는 꽃
작업반장의 눈을 피해 찔끔 하품을 하는 꽃
맘속에 수만가지 생각이 들끓는 꽃
하루 삼만원 일당을 받는 꽃
그 일당으로 밀린 공과금 내고 나면 없다는 꽃
아직 다섯시간은 더 쪼그리고 일해야 하는 꽃
누렇게 이가 썩고 입안에 하얀 구혈이 난 꽃
한번도 꽃인 적 없던 꽃들이
알록달록 차양 모자를 받쳐 쓰고
새로 외국에서 들여왔다는 꽃모종을 심고 있다
간들거리는 풀 모가지들을 바삐 땅에다 박아놓고
훌쩍 일어나서 점심 먹으러 가는
배꼽시계만큼은 오지게 울리는 꽃
꽃들의 홀쭉한 위장 속으로
밥덩이가 텅텅 굴러떨어지는 한낮이다



*시집, 입술을 건너간 이름, 창비








봄밤의 냄새 - 문성해



꼭 십구세만 말고
늙음이 만개할 때도 꽃이라 치자
꽃이 활짝 피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민경이 할머니 얼굴을 마주하면
묵은 향기에 내 옅은 졸음이 다 흔들려지


꽃받침이 꽃을 모시듯
차곡차곡 접혀진 목 위에서
주름진 얼굴이 송이째 웃을 때는
꽃송이가 쿵, 떨어질라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야 하지


어스름이 처마로 슬슬 내려앉는 시각
목련꽃들이 쉬 꽃잎을 접지 못하는 것과
마루에서 가갸거겨 한글공부 하던 민경이 할머니가
간혹 한숨을 쉬는 이유는 똑같은데


꽃이 꽃을 불러낸 듯
마당으로 내려선 민경이 할머니가
공중의 목련꽃들과 향기를 섞는
시큼덜큰한 봄밤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