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쓰임에 대하여 - 김명기

마루안 2018. 5. 1. 19:26



쓰임에 대하여 - 김명기



시공사가 임시로 쳐 놓은 허름한 담장 밑에
한 시절 쓸모 다한 주차 밀림 방지 턱이
가지런히 모여 있다
더러 찢기고 깨진 치유 불능의 상처를 품고
중고 혹은 재활용품이라 불리는 것들


어디론가 다시 쓰임을 위해 떠날 거라고들 하지만
풍찬노숙을 견디며 햇볕에 그을린 채
고정 핀이 녹슬고 껍데기 삭아가는 동안
아무도 더는 저들의 쓰임을 걱정하지 않는다
기다려도 달라질 기미는 없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저런 것쯤 치워버려도
아무 탈 없을 누군가의 눈에 거슬리면
저 자리마저 비워야 할 것이다


한순간 그렇게 쓰임을 다한다는 것


시급 혹은 일급이라는 서푼짜리 자본주의 담벼락 아래
비정규 혹은 알바라 불리며 간신히 아주 간신히
붙어 있는 당신들과 나는 어떤가
아무리 기다려도 반듯한 쓰임의 시간은 기별 없고
다만 아직 어느 한 순간이 오지 않아 그나마 다행일 뿐인



*시집, 종점식당, 애지








자본주의적 약속 - 김명기



시간바리, 탕바리
화주들이 나와 장비를 묶어 부르는 말이다
기본 한 시간 단위, 오 분이든 한 시간이든
같은 요금을 받는다
시간 단위당 값을 치르는
자본주의의 유한 약속


능동과 수동 생물과 무생물
기계와 사람 시간과 한탕을 버무려
무슨 치나 쟁이처럼 무심코 얕잡아 부르지만
아무도 저항하지 않는 말
저항은커녕 장비에 올라타는 순간
스스로 시간바리가 되는 자본주의의 첨병


그 순간
의심이나 저항을 버린다
살 수만 있다면 이깟 하대의 차별음이
무슨 대수겠나
짐짓 아무렇지 않게 부르면 달려가
고개 숙인다
서강 파밭가에 살던 수영의 말대로
온몸을 밀어부쳐 내 놓은 조악한 문장보다
훨씬 더 높은 값을 치는 몸부림의 부가가치


개 이름과 흡사한 시간바리
구동을 멈추고
합체의 몸피를 벗어 버리면
비로소 사람이 되지만
다시 부르면 이내 달려가는
달려가 먼저 고개를 조아리는
이 합성어에 대해 나는
진심으로 의심과 저항을 버린다
불러주기만을 기다리는 발바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