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멀리 있는 사람아 - 오민석

마루안 2018. 5. 2. 19:01



멀리 있는 사람아 - 오민석



봄날이 가네요
저기 중음(中陰)에 정지된 새들
바닷속 푸른 종소리
부르다 그친 노래
공포 끝의 검은 침묵
잊지 않으리
내 맹세는 갈매기처럼 가벼워
그저 당신을 따라 울 뿐
꿈속의 당신
옥잠화 초록 분수 넘어
어머니의 자궁으로 오세요
가시덤불 건너
장다리꽃밭으로 너울너울 오세요
항구에는 달도 지지 않고
죽은 별들만 넘실대는
아, 지금은 치욕의 시대
꽃잎의 허공
허공의 폐허
우울의 빗살무늬
화살처럼 쏟아지는
지금은 아, 돌들도 미치는 시대
너 거기 있어
멀리 있는 사람아
지금은 거짓의 시대
지금은 죽음의 시대



*시집, 그리운 명륜여인숙, 시인동네








먼 그대 - 오민석



비 그치니 화창하다
밤비에 진 꽃잎들
길바닥에 누워
하얗게 햇살을 튕겨낸다
조약돌을 밟던 어린 발바닥에
그새 많은 세월이 지나갔다
길모퉁이엔 더러 사라진 벗들
빨간 수숫대에 앉아 졸던 잠자리
환장하게 화창한 봄날은
이승이 저승 같고 저 생이 이 생 같아
작별도 부질없다
그저 평등하게 쏟아지는 햇볕에 눈멀어
먼 산으로 자꾸 눈길이 가는 게다
가는 사람 잡지 못하니
봄날의 반란을 지켜볼 뿐
상처조차 그리워지는 저녁에
지는 노을처럼 주막으로 깃들 일이다
아득히 또 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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