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낙화 - 김정수

마루안 2018. 4. 30. 18:55

 

 

낙화 - 김정수

 

 

꽃잎 하나 지는 걸 바라보는 저녁
그 꽃잎 지길 기다리는 아스팔트의 딱딱한 기억을 밟고 서다
본래 고독한 자리에서의 탄생은 한자리에 머물 수 없는 허공 같은 것
쉽게 자리를 이탈해 바람결을 타는 운명을 타고나는 것이 있다
결코 짧은 수 없는 지난한 항해를 시작한 사내가 빛과 어둠과 먼지의 이력을 속속들이 헤집는 동안
불빛만 보면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부나비의 속성으로 도처에 포진한 항성과 행성 사이를 관통하는 동안
혼자서 빛을 발할 수 없는 허공 같은 방랑의 길
순간의 빛으로 꼬릴 매달기도 하지만 어둠은 혼자 머무는 외로운 여행의 동반자
정해진 궤도도 없이 뚜벅뚜벅 마음 쉬어 가는, 정류장도 없이
모래 폭풍 불어 항로를 이탈하면 새로운 항로를 설정하지만
단 한 번도 비굴하거나 오장육부를 내어준 적 없는 도도한
질주, 생사를 넘나드는 블랙홀 부근 사수자리에 이르러서 한 무리의 떠돌이별 날아들면
발아래 임시 납골당을 내어 주기도 한다
별이 태어났다 죽는 그 화려한 순간에도 연신 꽃잎 흩어지고
그 꽃잎 바라보는 사이 사냥을 시작한 거미의 침묵이 깊어진다
강 건너 창문이 불 밝혀 스스로 빛나는 시각
노릇노릇한 냄새가 빵가게를 벗어나 꽃나무 한 바퀴 휘 익어간다
긴 산책을 끝낸 늙은 그림자가 손을 맞잡고 집으로 들어가는 저문 밤
미처 닫히지 않은 문틈으로 다시 꽃잎의 항해가 시작되려는지
외롭게 견딘 불빛 한 줄기 눈앞에 흐르고 있다
종내 어느 별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나고야 말 한 사내가 끊임없이
하염없이 어둠 속으로 추락하고 있다


 

*시집, 하늘로 가는 혀, 천년의시작

 

 

 

 

 

 

산수유 - 김정수

 


오래오래 바라보아야


그 자리에 있는 줄 아는


희미한 꽃이다 그것이


내 삶의 방식이다

 

 

 

 

# 김정수 시인은 1963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서랍 속의 사막>, <하늘로 가는 혀>가 있다. 현재 빈터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