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노인의 방 - 이수익

마루안 2018. 4. 29. 21:02



노인의 방 - 이수익



노인의 눈은
퀭하다.
덕장에서 막 겨울바람에 말린
명태처럼 육탈골립(肉脫骨立)한 깡마른 얼굴, 그 위에
움푹하게 팬 눈의 시선이
어느새 외골수로 깊이 길들여져 있다.


목소리도 노인은
칼칼하다.
젊은 날 부드러운 유액(油液)처럼 흘러내린
성대의 윤기가 사라진 지 이미 오래.
후문(喉門)은 좁아지고 공명은 떨어져 나가
입에서도 쇳조각 두딪치는, 건조한 음색이 피어난다.


노인은 이도
엄청 빠졌다.
질긴 세월을 오래 씹어 왔으므로 식상한 듯
부서져 나간 치아들,
잇몸이 숭숭 드러나므로 좀체 웃지 않아
더욱 굳게 침묵을 봉인한 입은 옛 성채처럼
무겁게 사방이 닫혀 있다.


노인은 이제
시간이 저를 구박한다고 생각하고
멀리 자리를 피해 돌아올 기색이 없다.
자신이 판 구덩이를 진지라고 믿고 오롯이 들어앉은
노인은 고집이
상난 황소다.


- 절대로 그리고 가까이 가지 마라.



*시집, 처음으로 사랑을 들었다, 시학








노인 1 - 이수익
-옹고집



나이 드니
고집밖에 없다.


고목에 핀 옹두리처럼
몹쓸 인상으로 굳어져버린
저만의
자폐 공간.


독거獨居하는 심술이
대창처럼 푸르고
꼿꼿하다. 



*시집, 눈부신 마음으로 사랑했던, 시와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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