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왜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 허수경

마루안 2018. 4. 25. 23:11

 

 

왜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 허수경


왜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꿈 같은가 현세의 거친 들에서 그리 예쁜 일이라니

나 돌이켜 가고 싶진 않았다네 진저리치며 악을 쓰며 가라 아주 가버리라 바둥거리며 그러나 다정의 화냥을 다해
온전히 미쳐 날뛰었던 날들에 대한 그리움 등꽃 재재거리던 그 밤 폭풍우의 밤을 향해

나 시간과 몸을 다해 기어가네 왜 지나간 일은 지나갈 일을 고행케 하는가 왜 암암절벽 시커먼 바위 그늘 예쁜 건 당신인가 당신뿐인가

인왕제색커든 아주 가버려 꿈 같지도 않게 가버릴 수 있을까, 왜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내 몸이 마음처럼 아픈가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


 




꽃핀 나무 아래 - 허수경


한때 연분홍의 시절
시절을 기억하는 고약함이여

저 나무 아래 내 마음을 기댄다네
마음을 다 놓고 갔던 길은 일테면
길이 아니고 꿈이었을 터 아련함으로 연명해온
생에는 쓰리더라 

나는 비애로 가는 차 그러나 나아감을 믿는 바퀴
살아온 길이 일테면 자궁 하나
어느 범박한 무덤 하나 찾는 거라면
이게 꿈 아닌가,

더러 돌아오겠다 했네 어느 해질녘엔
언덕에도 올라가고 야산에도 가도
눈 쓰린 햇살 마지막 햇살의 가시에 찔려
그게 날 피 흘리게 했겠는가
다만 쓰리게 했을 뿐 

했을 뿐, 그러나 한때 연분홍의 시절
꿈 아닌 길로 가리라 했던 시절



 


*自序

스승은 병중이시고 시절은 봄이다.

속수무책의 봄을 맞고 보내며 시집을 묶는다.

사랑은 나를 회전시킬까, 나는 사랑을 회전시킬 수 있을까, 회전은 무엇인가, 사랑인가.

나는 이제 떨쳐 떠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