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없는 사람과의 이별 - 김언

마루안 2018. 4. 26. 18:32



없는 사람과의 이별 - 김언



그가 사라지고 공기만 남았을 때
그렇게 말하던 그가 사라지고 공기만 남았다고 했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가 사라지고 그가 남는 버릇은 여전하여
대꾸를 못하는 내 버릇도 여전하여 참을만은 하였다
그는 수치심 때문에 사라졌다 아니면 분노 때문에?


그가 사라지고 당분간 그를 만나지 못한다
그는 어제 쓰러져서 오늘 일어서고 바로 이 순간,
그의 부재를 증명한다 지금 바로 눈앞에서


그가 사라지고 그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공기까지 달아난다면 나는 공기처럼 서서
공기처럼 잘게 부서지며,


가장 멀리 있는 그에게로 가야 한다
그가 눈앞에 서 있는 이유다 충분히 불가능한 이유
때문에 그는 자주 부풀어오른다 폭발할 듯이


그는 그의 부재를 심어두고 방금 전까지 일어서서
오래 전에 사라져버렸다 수치심 때문에?
아니면 분노 때문에



*김언 시집, 거인, 랜덤하우스중앙








이 동네의 길 - 김언



이 길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근성이 있다
이 길과 이 도로와 이 거리에 서서
싸우는 사람은 계속 싸운다
얌전한 고양이들은 집 밖을 나오지 않지만,
싸우는 사람과 싸우는 사람의 요점은 뜻밖에 간단하다
이 길과 이 도로와 이 거리에 서서
경주를 하자는 건지 달리기를 하자는 건지
바람은 눈을 찌르고 가로수는 꼭 사람을 향해 넘어진다
어제에 이어 오늘은 장대비, 쏟아지는 거리에서
도로를 다듬고 어제에 이어 오늘은 새로 이사오는 사람
외출하는 고양이는 먹을 것이 떨어져서 돌아오지만
내리는 비를 피해 우산 뒤에 숨은 얼굴은
새로 이사오는 사람, 그게 누굴까 누구일까
잊어먹지 않고 싸우는 사람은 계속 싸우고
도로는 도로를 다듬고 그 도로에 서서
경주를 하자는 건지 달리기를 하자는 건지
결승점에 나란히 도착하는 나무, 멀뚱히 서서
달려오는 이 길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근성이 있다
얌전한 고양이들은 집 밖을 나오지 않는다






*시인의 말


그것도 몸이라고 춤이 나온다.
그것도 입이라고 다른 입을 찾는다.
내 어깨는 내 어깨 하나로 충분하지만,
그것도 비좁아서 양쪽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싸운다.
중력이냐, 빛이냐 이 둘 사이에서
나는 어느 날 산책하기를 멈추었다.
나의 사소한 모험담과 여행을 멈추었다.
영원히 알 수 없는 나무 한 그루와 함께
거의 모든 증오가 늙어간다.


다 비껴가는 것들 중에 일부가 나의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