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마음 뒷곁에 소를 매다 - 이은심

마루안 2018. 4. 22. 17:59

 

 

마음 뒷곁에 소를 매다 - 이은심


느닷없이 어두워져 한 차례 소나기 퍼붓더니 건너갈 수 없는 곳이 생겼다
소는,
거기서 운다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짖던 것들 잦아들고
믿었던 것들도 다 휩쓸려가고

소가 몰매를 맞는다
말뚝에 매인 몸이 오죽하면 눈물의 반지름을 도는 동안
작당하고 몰려와 쏟아지는 채찍을 피할 수 없는 사랑처럼
홀로 견디는 그대여
이제 젖은 마음을 뒤적이면
그 터진 잔등을 어디서 본 듯 하여라
오래 된 얼굴을 지금 막 내게로 돌리는
쓸쓸한 신(神)의 모습

용서마소서
쩌엉- 울음 끝을 뭉개는 번개
이쪽에서
혼자 늦은 점심을 먹다가

부득이 마음 뒷곁에 소를 매고 후줄근히 젖는 사람이 있다

목부가 낮잠에 빠져 꿈에 떡을 얻어먹는 잠시잠깐의 일이다

 

 

*시집, 오얏나무 아버지, 한국문연

 

 

 

 

 

 

초음파 메시지 - 이은심

 

 

흰 손의 저 술래가 찾는 것은 한때 늠름했던 살구나무 뒤 물혹이 되어버린 불치의 추억이다

의심스러운 꽃들이 쓰윽쓱 몸을 지워가는 햇빛 한 켜 바람 한 점이다

삶이 거름밭이니 바람이 불 때마다 저리 환하게 만개하는 질문이다

 

꽃이 피었다고 울지야 않겠는가

 

탈의실에서 가운을 갈아입고 어머니의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염색체와 기념사진을 찍는다

 

생애의 유리창을 알코올로 닦으며 술래가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

- 답하지 않겠다

너는 한때 누구의 간절한 가슴이었는가

- 역시 답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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