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겅퀴꽃 - 김이하
낡은 차양이 떨어져 나간 서까래
그 사이 화안히 열린 하늘, 하늘 눈부신
한낮 햇볕의 숨결 씩씩하게
내 뼈 속의 진을 내어 게거품을 뿜는
이 여름, 징그런 사금파리 햇살에
가위눌려 꿈에서 깨었네
짓이 난 나비 따라간 바람 한 줄기
우쭐우쭐 날아올라 끝간 데 없이
다가갈 수 없는 그녀의 뒷모습을 덮고
가라앉는 흙먼지 속에서 마지막 웃음
보았네, 자줏빛 입술로 돌아보는 엉겅퀴꽃
오래 미워할 것도 없는 그녀, 나 그녀를 위하여
삶을 비굴하게 살아온 것도 아니지만
어쩌면 뜨겁게 산 적도 없던
부끄러움이 얼굴 위로 훅 끼치는
사내의 삶이 한없이 힘들고 쓸쓸한 여름
떠나 버렸네, 내 가슴의 그녀
그 여름 차양 없는 처마 밑으로
하얗게 소금 입술이 타듯 징그런 기억들
쩡, 뼈가 울리도록 가슴 뒤척이면
금간 논바닥에 황금의 빛살로 내리꽂히는
불꽃, 몹쓸 사랑의 꿈 싸질러 버리네
아찔한 가슴 엉겅퀴꽃만 피었네
*시집, 내 가슴에서 날아간 UFO, 청파사
飛犬 - 김이하
나의 비상은 무겁다
철새들의 모음으로 끼룩거리다가
앵글이 꽉 차게 날아오르려 했지만 이 비상은
낮은 곳을 항하여 떨어지는
포물선 끝보다 위태롭다
어느 한순간 짜릿하게
살아온 삶보다 무겁고 큰 행복의 절정을
비행하고 싶었던 간절함으로
나는 꽁지를 낮추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지만
한 철 헤맨 철새들의 빈 하늘로
끼룩거리며 날아간 어느 한 점에서
절망과 마주친 광활한 여백만이 덩그마니 남아
날개를 편 나의 꿈을 여지없이 흔들어 버린
저 비웃음 같은 푸른 하늘
바닥에 웅크린 다리뼈 끝으로
시린 바람이 몰아쳐 올 때
나는 재빨리 웅크린 몸을 솟구치며
다시 한번 끼룩거려 보지만
천수만의 장관과도 같은 새떼의 이륙은 없고
어쩌면 총알이 되고 싶었던 머리
그 슬픔을 무장해제 당한 모골이
허공중에 아무도 날 수 없었던 한 대역을
가득 채우고 떨어진다, 나의 비상은
여지없이 곤두박질쳐 버린 포물선 끝에서
끝났다, 새떼의 비상이 아름다운
정지 화면을 보면서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비 내리는 이 봄날에 - 이종형 (0) | 2018.04.21 |
---|---|
너는 봄이다 - 박신규 (0) | 2018.04.21 |
반만의 사랑을 위하여 - 박남원 (0) | 2018.04.20 |
창문 아래 잠들다 - 이응준 (0) | 2018.04.20 |
벚꽃 족적 - 주영헌 (0) | 2018.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