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반만의 사랑을 위하여 - 박남원

마루안 2018. 4. 20. 21:50

 

 

반만의 사랑을 위하여 - 박남원


준비 없는 만남 속에서 그대의 반을 알았고
이별의 긴 불면 속에서 나머지 반을 마저 알았네.

삶이 어차피 운명이라면
잃어버림으로 오히려 찾음이 되는
이것이 내 삶의 슬픈 운명이라면

만남 속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지 못한
후회와 번민의 속아픔이거나
이별 이후에야 참답게 찾은 그대에의 사랑이
이제는 이미 아득한 거리에서 가물거림을

백 번을 나는 다시 깨달아야 했던 것이지만
조금 더 참고 수고하고 기다리는
미덕이 있어야 했던 것이겠지만

그러나 어차피 반은 내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내 운명의 몫인 반만의 사랑이
차라리 온전한 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시집, 사랑의 강, 살림터

 

 

 

 

 

 

사랑한다는 것 - 박남원


세상에서 한 사람을 만나
사랑한다는 것은
가슴으로 세상을 연습하는 일이다
비가 오면 비에 젖는 바다의 모습으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이다

혹은 불볕 쏟아지는 여름날
바람이 저녁 산을 어루만지듯
가슴을 열고
목마른 여름 길을 홀로 걷던 사람과
마주하는 일이다 이제는
지친 다리를 쉬게 하는 일이다

지상에 존재하는 어느 미물일지라도
사랑은 결코 외면하지 않느니
한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목숨을 사랑한다는 것
그의 웃음부터 흐르는 눈물까지
내 스스로의 것으로 돌려받는 일이다

그리하여 사랑한다는 것은
둘이 똑같은 하나가 되어
늘 어둠의 깊이보다 높은 데서 빛나는
별들을 한없이 바라보는 일이다

 

 

 

 

# 박남원 시인은 1960년 전북 남원 출생으로 숭실대 독문과를 졸업했다. 1989년 <노동해방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막차를 기다리며>, <그래도 못다 한 내 사랑의 말은>, <사랑의 강>, <캄캄한 지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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