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이유는 없다 - 임동확

마루안 2018. 4. 19. 21:50



이유는 없다 - 임동확



이유는 없다, 봄날엔 심지어 죽음마저도 꽃이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나는 급박한 사태가
꽝꽝 얼어붙은 연인들의 가슴을 위한 거라면
아무렴, 봄날엔 굳이 희망만이 아니라
왠지 모를 지독한 쓸쓸함마저 축복이다
그래, 이유는 없다 정령 떠나보내고서야
너의 흔적들이 눈으로, 혀로 끈적이는 거라면
여전히 아무것도 해결된 것 없는 조국의 봄날엔
너와 나의 지난 맹서와 이별은 거짓말이다
어차피 특징 없는 세상에서 일어난
소란과 불행의 전부가 꽃일 수밖에 없는 봄날엔
이유는 없다, 더러운 생의 비겁마저도 무죄다
그 어느 것 하나도 옳지 않은 것은 없다
무작정 흘러가는 흰 구름조차 뜻밖의 선물들이다
단지 그게 제 의지로 어쩔 수 없는 불가피였다면
정말이지 정작 그 누구도 거부하지 못하는 필연이었다면



*시집, 길은 한사코 길을 그리워한다, 신생








미완성을 위하여 - 임동확



목숨 걸듯 길길이 날뛰는 이 순간이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행운이라는 듯이 살자
설령 통성명만 주고받고 말 사일지라도
하나의 역사와 마주하듯 눈물겹게 만나자


너와 나 사이, 실꾸리처럼 얽힌 그 많던
슬픔과 기쁨, 비탄과 환희를 다 주고받기엔
솔직히 주어진 지상의 날들이 짧다고 말하자


너와 나의 만남 뒤에 넘쳐나는 그 많은 할 말들을
남겨둔 채 이렇게 초조해 하고 그리워하는 것만으로
우린 충분히 잘살고 있다고 전하자


제 흥에 겹거나 서러운 자들이 술집을 찾듯,
아니면 노래를 부르듯 가능하다면 유쾌하고 비장하게
금지된 사랑의 시간과 뜨거운 입맞춤을 나누자
늘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만나고 헤어지자


이제 아무리 가로막아도 제 갈 길이 분명한 것들을
될 수 있는 한 가혹하게 떠나보내도록 하자
늘 최후의 잔을 마시듯이 이별의 순간을 예감하자


뒤돌아보면 어처구니없는 모멸의 연속인 나날
결국 미완성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완성을 위하여
오늘도 위대하고 감격스런 생의 하루였다고 선언해 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