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광기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광기 - 하린

마루안 2018. 4. 18. 20:58



광기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광기 - 하린



출처가 비슷한 광기들이 모여 하나의 혁명을 구성하려 할 때 가장 유순한 짐승 하나가 만들어진다


광기는 혼자일 때만 완전해지므로 허름한 주점을 혼자 가는 일 따윈 피해야 한다


미치지 않기 위해 괜찮다는 포즈를 취하며 병을 깨고 달려드는 초보들이 있으니


방심하면 멱살을 잡고 전부를 그을지 모르니


환절기 땐 특히 기분을 재구성하며 먹구름을 견뎌야 한다


혼자, 아주 철저히 혼자 1인용 의자에 앉아 독주를 마실 때도 벌컥벌컥 튀어나오려는 무책임한 선언을 참아야 한다


이것은 흔해 빠진 자격증이나 면허증 같은 것, 우리는 각자 테이블에만 신경 쓰는 옹졸한 계급을 획득한다


그런데 저기, 피도 철철 흘리지 않고 광기 한 마리를 만지작거리다 마흔을 넘긴 사내가 운다


퇴직자도 미취업자도 이혼남도 아니다 단지 마흔에 들어섰을 뿐이다


감자처럼 웅크린 자세로부터 소리 없이 비굴이 샌다 이것이 진짜 기형이다 광기의 완성이다



*하린 시집, 서민생존헌장, 천년의시작








서민생존헌장* - 하린



나는 자본주의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서민으로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가난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신용불량자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약소국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생존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출근과 튼튼한 육체로,
저임금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출신을 계산하여,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기초수급자의 힘과 월세의 정신을 기른다.
번영과 질서를 앞세우며 일당과 시급을 숭상하고,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헝그리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대기업이 발전하며,
부유층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지름길임을 깨달아,
하청에 하청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스스로 잔업 전선에 참여하고 월차를 반납하는 정신을 드높인다.
부자를 위한 투철한 시다바리 따까리가 우리의 삶의 방식이며,
자유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가난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서민으로서,
조상의 궁핍을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빈민을 창조하자.



*1968년에 선포된 <국민교육헌장> 패러디.




*시인의 말


나의 두 번째는
실패와 패배
고독과 우울
그리고 소외에 대한 필연적 반응이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을 때
내 시는 밤을 물어뜯으며 미친 듯이 발동한다.


네 가지 모두는 지금까지 나를 한 번도 편하게 방치한 적
없다.


어쩌면 이것은 어둠이란 짐승의 자기 증식이거나
자기 복제일 것이다.


다음번엔 자기 증식이나 자기 복제의 늪에
빠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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