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겨울 상여길 - 정원도

마루안 2018. 4. 16. 21:47



겨울 상여길 - 정원도



새마을부역 나갔다가 마부들끼리
공짜 막걸리에 취해 돌아온 밤
흥얼거리던 노래 몇 자락 허공에 남긴 채
아버지 이승의 마지막 잠결이 될 줄이야


얼었던 땅이 풀리며 풀들이 막 돋던 때
어린 걸음이 따라가기에는
겨울 상여길 너무 멀고 험했네


가뭄에 누렇게 뜬 보리밭을 가로질러
가신 슬픔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
겨우 십년 살고 또 남편과 사별인
어머니가 자꾸 떠올라
어린 상주 대지팡이가 너무 무거웠네


얼어붙은 땅 얇은 삼베옷에 떨며
진눈깨비 흩날리던 흐린 하늘가
엉겨 붙는 마른 눈물 떼어내며 뒤따를 때
북 우는 소리 살얼음 갈라지는 요령소리에
구슬픈 상여 소리가 너무 멀었네



*정원도 시집, 마부, 실천문학사








마부와 시인 - 정원도



길들인다는 말의 양면성을
나는 어릴 때부터 터득했다


아버지 노쇠한 말을 갈아서
새 말을 길들이러 가던 금호강변
바퀴가 푹푹 빠지는 길도 없는 자갈밭을
재갈을 물리고 마차를 채우면
빈 마차조차 거부하며 날뛰던 말을


긴 갈기 목덜미 쓰다듬으며
어르기도 하다가 달래보기도 하면
조금씩 짐을 늘릴수록 버둥대다가
커다란 눈동자 껌벅대며 눈물을 뿌려댔다


그렇게 아버지는 짐을 거부하며
날뛰는 말(馬)을 길들여야 하는 마부가 되었고


나는 너무 온순하여 소용이 못되는 말言을
사납게 날뛰기도 하는 말로 길들여야 하는
또 다른 마부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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