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병상련 - 오인태
꽃 지는 날보다
꽃 피는 날이 더 쓸쓸했던 날이 있었다
눈 뜬 어둠, 사방에서
꽃들이 소리 없이 펑펑 터질 때
나도 쓸쓸해서 숨죽여 울던 날이 있었다
꽃들이 너무 쓸쓸해서 피는 것이라 생각했다
꽃 피는 날보다
꽃 지는 날이 더 쓸쓸했던 날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시선이 일제히 돌아서고
꽃들이 아직 붉은 제 몸을 서둘러 지울 때
나도 쓸쓸해서 무릎에 고개를 묻은 날이 있었다
꽃들이 너무 쓸쓸해서 스스로 목, 숨을 거두는 것이라 생각했다
꽃이 피어도 쓸쓸하고
꽃이 져도 쓸쓸했던 날이 있었다
*오인태 시집, 별을 의심하다, 애지
나무의 결단 - 오인태
여기까지다
더 이상 가눌 수 없어
마침내 발밑에 모든 잎들을 떨궈놓고
가을날이 얼마나 뒤숭숭했으랴
날려갔든지
물어갔든지
부서졌든지
젖 떼인 아이같이 칭얼대던 잎들이
눈앞에 보이지 않을 무렵
제 몸에 회초리 자국을
죽죽 긋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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