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내년 봄에 피는 꽃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색다르다. 더디게 온다는 생각과 함께 지는 꽃을 바라보는 마음도 다르게 느낀다.
저 꽃 작년에도 피었는데,, 봄이면 늘 가던 곳에서 다시 핀 꽃을 보면 내 삶이 더욱 소중해 보인다. 바람만 살짝 불어도 꽃이 진다. 꽃 지는 중에 봄소풍을 나온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소리가 더욱 싱스럽다.
노란 병아리들이 이럴까.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아이들은 병아리처럼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한 무리 노인들이 보인다. 저들은 작년에도 왔을 게 분명하다. 지는 꽃을 보며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소풍 - 조찬용
아이들이 성벽 길을 줄지어 소풍을 간다
두 노인네 느티나무 아래에서 장기를 두며 아이들을 바라본다
거쳐 온 인생과
거쳐 가는 인생 사이 공간의 담장 벽
덜렁 둘이 마주앉은 황혼의 길에서 장기를 둔다
그땐 우리도 많이 설레었지
그랬었지
잠을 이루지 못해도 아침은 환했었지
하루하루 덮고 나면 이리 지나온 일인 것을 말이네
꿈길을 걸어온 셈이지
저 아이들도 오늘 꿈길을 걸어간 걸 알기나 할까
아이들 가뭇 사라지고 남은 빈 공터
뒤뜸뒤뜸 한낮 두 노인의 소풍도 짧기만 하다.
*시집,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북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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