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투신 - 조인선

마루안 2018. 4. 8. 18:51



투신 - 조인선



한 번은 새가 되고 싶었겠지
웃음소리처럼 떠오르다 사라지는 영원이 그리웠겠지
개의 등에 솟아난 날개
고양이의 입술에 젖어 있는 언어가
당장 눈앞에 펼쳐진다면 그게 꿈일까
구름에 매달린 너와 나의 절망이 만나는 자리에
연약하게 피어난 떡잎 같은 위로
허공과 맞닿은 삶이 결국엔 날개였다면
그 얼마나 바람 같은 생이었겠어
납작 엎드린 용서 앞에서 떠오르는 노래는 피가 묻어
어디에도 미소 하나 없지만
아무래도 이번 생은 잘못된 것만 같아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처럼 고꾸라질
너와 나는 우리가 되는
풍선 가득한 한숨의 흔적
봄날 가득했던 아지랑이의 꿈이여



*조인선 시집, 시, 삼인








대화 - 조인선



봄에 늙은 여자가 연애하고 가란다
돈 주고 사랑하는 법을 모르기에 이따 오겠다고 했더니
후회하지 말란다


여름에 다방 레지가 웃으며 떡 다방에 대해 설명했다
자기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키스방을 아냐고 했다
놀란 표정을 짓더니 또 오라 했다 웃지는 않았다


가을에 윤동주의 서시를 걸어두고 나를 맞이하던 창녀를 본 적이 있다
시를 좋아하냐고 물을 수 없었다
이십 년도 지난 얘기지만 정말 꿈같았다 그 순간만큼은 아름다웠다


겨울에 아내는 내 자지를 새라고 했다
창녀는 금새라고 했다
베트남 말인 줄 알았는데 역시 시인의 아내는 다른가 보다
새가 없으면 하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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