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몸을 마중 나온 꽃가루같이 - 박승민

마루안 2018. 4. 7. 12:24

 

 

몸을 마중 나온 꽃가루같이 - 박승민


일주일을 못 넘긴 이 꽃가루는
몸을 마중 나온 뼛가루 같다.

내부를 열람하기 위해 외부를 밀봉하듯
땅의 관 속에 마음을 밀어 넣고 더 축축해져야 한다.
덜 썩으면 악취가 나지만
완전히 썩으면 향기가 되기도 한다더군.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탄식을 뿌리로 누를 줄 아는 탄력을 나는 삶의 기술이라고 부른다.

몸이 더 먼 오지로 하방(下放)해서 한 살림 차릴 때
뛰쳐나가려는 마음과 눌러 삭히려는 몸이
땅 위로 들썩할 때

그때 혹시
단단하게 심어둔 어둠뭉치에서
자기 신음이 갈래갈래 터져 꽃으로 피는지도 몰라

그뿐

꽃잎이 한 일주일 유랑하다 쓸쓸해진다.
어깨에 비수어진 뼛가루를 털며 가족사진 한 장씩 박고
모두들 이 세상 프레임 밖으로 각자 헤어진다.


*시집, 슬픔을 말리다, 실천문학사

 

 

 

 

 

고아나무 - 박승민


나는 곧 고아가 되리라
무자식 상팔자는 이미 이룬 몸

나무는 나면서부터 이산가족이다

비탈면이 물고 있는 바위에 기대어
팔짱을 끼듯 마을을 내려다보는,
가끔은 매의 눈으로 동선을 주시하지만
가타부타 한 마디 표정도 없이
다른 무늬의 밑그림처럼 살아온

꼭 그런 나무가 있다

겨울이 오기 전에 한발 먼저 알몸이 되는
공복이 겨울을 넘는 가장 단단한 식욕임을 본능으로 아는

등걸이 나간 나무가
그의 외로움에 먼저 살을 기대지만,
몸을 틀어 그 무게마저 털어내는
자기 마음을 자기 심에만 박을 수밖에 없었던

문득 낯선 자신이 옆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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