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이번에는 목련이다 - 문성해

마루안 2018. 4. 6. 19:58



이번에는 목련이다 - 문성해



이제부터는 흰빛이다
이제껏 세상의 우글거리는 빛들을 따라
대처를 떠돌았으니
나는 내 남은 빛을 목련에게 쏘련다
일요일이면 교회도 다녀보고 절에도 기웃거려 봤으니
이번에는 목련교도이다
대처로만 떠돌다 늙은 화공의 붓 하나가
쿡쿡 목련을 찍어놓은 이 대낮
나는 일장춘몽을 쫓느니
훤칠한 키의 저 목련랑이나 사랑하리라
왜 봉오리들은 옆구리가 굽었는지
그 빛은 왜 채색을 기다리는 도화지 빛인지
왜 저 아낙은 냉이를 캐도 꼭 목련 그늘 아래서만 캐는지
그건 당신만 보면
내 허리가 굽어져 자꾸만 웃는 이유 같은 것
그건 자꾸 관심이 가고 또 관심 받고 싶다는 것
이유 없이 좋다는 것
날이 갈수록 벗겨지고 벌어지는 당신 가르마를 보듯
오늘은 꽃잎 떡떡 벌어지는 목련의 상부를 내려다보며
저 안간힘의 흰빛을 내 눈의 곳간에 차곡차곡 쌓아두려 한다
거뭇한 슬픔 앞에 켜들
한 해 흰빛의 양식을



*시집,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문학동네








밤비 오는 소리를 두고 - 문성해



바람에 나뭇잎들이 비벼대는 소리라 굳이 믿는 것이다
한창 재미나는 저녁 연속극을 끌 수가 없는 것이다
빨래가 널린 옥상을 괜히 한번 염두에 둬보는 것이다
뭔가에 환호할 나이는 지났다고 뭉그적거려보는 것이다
속는 셈치고 커튼을 열고 베란다 문을 여는 수고가 하기 싫은 것이다
누가 이기나 최대한 견딜 때까지 견뎌보는 것이다
손익 계산부터 해보는 것이다





# 문성해 시인은 1963년 경북 문경 출생으로 영남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와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자라>, <아주 친근한 소용돌이>, <입술을 건너간 이름>,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가 있다. 대구시협상, 김달진문학상 젊은시인상, 시산맥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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