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목련, 여미다 - 김수우

마루안 2018. 4. 6. 19:04



목련, 여미다 - 김수우



목련 망울에 봄눈 내린다


한 잎 눈발
산속 눈밭에 놓인 늙은 오소리의 죽음을 실어왔다 오소리를 한 번 본 적도 없으면서
목련, 옷깃 여민다
 

피고 싶어 피는 게 아니다
닫혀버린 한 칸 눈매에 여미는 가슴이다
여미고 싶어 여미는 게 아니다
떨어지는 다락 한 채 받치려는 손길이다
한 여자가 퇴근길 지하철에 몸을 날렸다는 소식, 서슬 퍼런 고독 때문에라도
저 부유하는 비닐봉지들 때문에라도
목련 벙글어야겠다 이 악물어야겠다
여미고 여미고
알 수 없는 이치들을 그냥 끄덕일 때까지
치밀 방법 밖에 도리 없어
목련, 오소리 맨발처럼 불퉁해진다


한 잎 눈발
실어간다 목련이 여민 오솔한 하늘, 울툭불툭 휘어지는 본풀이, 어디선가 사랑이 시작되고 누군가 사랑을 팔고 있으니



*시집, 젯밥과 화분, 신생








白日夢 - 김수우



부쩍 환각이 깊어졌다 얼굴들이 많다
도대체 뉘신가 둘러보니 모두 내가 분만한 연인이다
에그머니, 마른 젖이 핑 돈다


환각이란 생활 뒤에 있어야 하건만
그러다 나비 되든 꽃잎 되든 슬몃 날아오르건만
일상을 떠밀고 전면에 나선 저것들
수면부족 탓이라 노화현상이라 단언하지만


소붓소붓 싸락눈 같은 졸음 사이
밥 먹다 숟가락 놓치는 거친 졸음 사이
나를 저울질하는 얼굴들
먼 시간 거슬러왔을, 눈금 총총한 골마루들
녹슨 주전자처럼 세간에 어울리지 못하고
한켠에 비집고 앉아
입술을 그저 지껄이는 주둥이로 만들어버린다


절망도 손님으로 대접하듯
내 책임은 그네들을 접대하는 일
환각 또한 오래 전 길 떠난 내 영혼이 틀림없기에
삼각함수 풀듯 환각의 방정식을 배우기로 한다


돌아온 연인들아 고단했던 청춘들아
이름 얻지 못한 사생아처럼 춥지 말라 굶지 말라
당부하고 당부한다
대책없이, 저울대 평평해진다





*시인의 말


내 언어들이 제사일 수 있을까.
하다못해 지극한 맨발일 수 있을까.
제의를 잃어버린 시대,
모든 귀신들이 그립기만 하다.


헛제삿밥 같은
빈 화분만 매일 늘어간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자꾸 중얼거리면
혹 그대를 만날 수 있을까.


불행한 사치에 지불하는 절대적 비용,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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