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영원한 시간 - 김주대

마루안 2018. 4. 7. 19:26



영원한 시간 - 김주대



나는 시간의 출입구이자 거주지
나를 출입하면서 몸을 얻은 시간은
하늘도 땅도 없던 출발지의 헐벗은 나를 밀고 와서
세계의 색과 소리를 만지며 더러 행복하게 살다가
내 몸을 떠날 것이다
시간은 결국 더운 숨 가진 몸의 불안과 추위로 떨면서
물속 잉크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만
전신에 핏줄 같은 궤적을 그리며
지금은 나를 붉게 살고 있다
시간의 한쪽에 아들이 와서 아팠고
나를 똑 닮은 딸이 돈벌이 노래를 부르며 피를 운다
혈육이 얼마나 더 먼 데까지 시간을 데리고 갈지
단지 오늘 몸 깊이 어두운 궤적을 따라 도는 피를
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집, 그리움의 넓이, 창비








인내천(人乃天) - 김주대



아버지의 정자는 갈기를 달고 사자처럼 달렸다
나의 시작은
소용돌이치는 어머니의 열기 속으로
아버지가 맹렬히 뛰어들 때부터이다
아니, 나의 시작은
아버지가 어머니의 벌거벗은 곡선 위에서
꼬리뼈를 흔들며 정자를 태동시키던 때부터이다
아니, 정자 이전 수유기의 아버지가
할머니 유두에 입을 대던 그 따스했던 처음부터
할머니의 젖과, 젖을 돌게 한 펄펄 끓던 미역국부터
미역부터가 나의 시작이다
아니, 더 거슬러올라가 나는 물을 잡고 울던 해저
미역을 밀어올린 바다이기도 하지만
천둥과 시퍼런 폭우로
일렁이는 바다를 쏟아낸 하늘이 나의 진짜 시작이다


지금 하늘은 아들을 통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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