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막차를 타며 - 최희철

마루안 2018. 4. 6. 19:40



막차를 타며 - 최희철



늦은 시각 어둠 속에서
엉덩이를 맡길 곳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


차가 출발하자
사람들은 잘 마른 빨랫감처럼
비로소 굳었던 표정을 편다.
한결 보드라워진 것이다.
이제 덜그덕 거리는 것은
종일 매달려 왔던 생업의 껍데기들뿐.
그들은 생김새도 달라
서로 쳐다볼 겨를이 없다.
하지만 곧 끼리끼리
어울리며 낄낄거린다.
피곤한 하루였으며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혹은 희망이 보인다고
그러니 좀 더 견디어 보자고
세상이 이렇게 만든 것이지
우린 변한 게 없다고
너무 납작하여
일어설 수조차 없다고


막차는 봄 강물처럼 녹아들고
어두움은 보푸라기가 되어
발밑에 내려앉는다.



*시집, 영화처럼, 푸른사상








초생 - 최희철



아버지는 윤회를 하다 처음 사람으로 나는 것을 초생(初生)이라 하며, 초생은 몸 어딘가에 필시 큰 점이 있는데, 대체로 어리석거나 심지어 바보스럽다 했다. 내가 알고 있는 큰 점 있는 사람은 대체로 그런 것 같아 맞는 말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결혼하고 나서야 내 등에도 큰 점이 있다는 걸 알았다. 어느 날 초생에 관한 얘기를 내게서 들은 후 마누라가 놀라며 소리쳤다. "당신 등 뒤에도 큰 점이 있어요!" 순간 내가 드러내었던 모든 바보스러움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마누라가 위로랍시고 당신 점은 그리 크지는 않다 했을 때 눈곱처럼 일어나던 생각, 초생이 짐승에서 사람으로 넘어가는 입구가 아니라, 오히려 질기고 복잡한 인연의 문턱을 넘어 윤회의 끄트머리로 가는 입구가 아닐까. 그건 그렇고 아버지는 왜 말해주지 않았을까. 당신도 초생이라서? 큰 점이 짙은 그늘이 되어 너무 무거울 거라 생각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