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저녁어스름 - 유병근

마루안 2018. 4. 5. 22:17

 

 

저녁어스름 - 유병근

 

 

발걸음 하나 가고 있다

길이 어떻고 길맛이 어떻고

숭숭 구멍 뚫린 골다공증 같은

숭숭 구멍 뚫린 길바닥

점아 점아 콩점아, 엿가래 같은 콩점아

귀를 감싼 귀머거리

미처 길들지 못한 세상을 적는다

말아 올린 바짓단을 적는다

바짓가랑이를 터는 젖은 발걸음

세상은 여기 아니면 저기도 바람이다

가망 없는 저 구름을

가망 없는 저 너울을 떠미는

저녁어스름은 어둠에게로 간다

어제를 버리고 오늘을 버리고

어제오늘을 등에 진 어스름이 온다

 

 

*시집, 꽃도 물빛을 낯가림한다. 작가마을

 

 

 

 

 

 

숨바꼭질 - 유병근

 

 

숨을 곳이 없는 시멘트벽에

해바라기가 걸려 있다

꽃 속에 사자 이빨이 보인다 무서운

이빨을 걷어내고 해바라기 꽃 속에

숨을까 아주 먼 곳에서 하필

얼음산이 무너진다는 소식이 있다

무너진 얼음산 어느 골짝에 숨을까

이 도시의 우후죽순 아파트 단지

돌담이 사라지고 골목이 사라지고

북극해 어디 얼음산이 사라지고

아파트광고는 날마다 지나간다

공룡 등치 같은 아가리 같은

광고지 어디 해바라기가 걸려 있다

반쯤 일어서는 듯 슬그머니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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