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명왕성 - 함태숙

마루안 2018. 4. 2. 20:15



명왕성 - 함태숙



명왕성은 왜 제일 먼 길로 돌아서 갈까

몸이 곧 담벼락인

그의 바깥엔 아무것도 없는데

어떤 고독한 결말을 먼저 알아

불의 외곽에

멀찍이 물러서 있나?

빛을 탐하지 않으며

빛을 오로지 지키는

침묵 깊은 별 하나

이 궤도는 너무나 멀어서

눈빛 잠깐 일별하는데도

우주가 다 타버려

한 달은 너무 급하다

두 달은 되어야 너를 볼 것이지

눈앞에서 휙 사라지지

소란스런

별의 군중 속으로

점, 점, 점 멀어지는 모습

다시 돌아오는 것도

끝, 끝, 끝내러 오는 모습



*시집, 새들은 창천에서 죽다, 한국문연








행성, 물들다 - 함태숙



구름이 궤도를 낮춰

은행나무 속으로 들어갈 때

바람은 오랜 선율을 데려와

낯선 이들의 마음을

한 잎에 포갰다


저물녘

불그스레하게 부은 눈두덩 위로

뒤척이는 은행 빛

사선으로 날던 기러기 떼들은

아둠을 끌고 와

속눈썹처럼 가지런히

상한 얼굴 위를 내려 덮고

제각기 남루해진 하루의 노고들은

지금 값없는 위로를 받고 있는 것


누가 먼저 물들어 슬픔을 달래는가

당신과 내가 함께 사는 이 행성에





# 함태숙 시인은 1969년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중앙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전공했다. 2002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새들은 창천에서 죽다>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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