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봄불 놓는 여인 - 이소암

마루안 2018. 4. 1. 09:30

 

 

봄불 놓는 여인 - 이소암


간밤
천상의 나그네
네 방을 두드렸다
오래도록
네 몸
헹궈내는 소리 들렸다

네 몸을 열면
공기의 속보다 투명한 고요가
지친 달이 몸을 뉘이는 오두막이,
남아 있는 내 생을
걸어 두고 싶은 벽이 있었다

그러나 몹쓸 꿈을 꾼 것이냐

미풍의 실핏줄까지 비춰내는 햇살
보란듯이 기대어
타락타락
봄불 놓는 여인이여, 나는
오늘 밤 일기를 쓴다
없다고 쓴다, 목련


*시집, 내 몸에 푸른 잎, 시문학사

 

 




내 몸에 푸른 잎 - 이소암 


가까이 있는 그를
멀리 보고 돌아온 날 저녁
마지박 동백잎 뛰어내렸다
한 잎이 몰고 온 강한 회오리바람,
기억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격리시킬 듯
가슴 한복판
굵은 기둥을 세우며 치솟아올랐다
휩쓸리지 않으려면
깊숙이 뿌리를 박아야 해, 먼저
낙하한 동백잎들이
종잇장같이 얇은 몸을 뒤척일 때
그 소리 내 몸에 옮겨 적으며
서릿발 같은 밥을 삼켰다
내 몸 어디선가
울컥울컥 붉은 소리 들렸다
소리 나는 곳 따라 더듬으면
자꾸 푸른 물이 묻어나오고
푸른 물 고인 자리마다
여리고 푸른 잎 고개를 드밀었다




# 이소암 시인은 전북 김제 출생으로 군산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2000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내 몸에 푸른 잎>, <눈부시다 그 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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