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안개, 삶의 변방에 내리는 - 최준

마루안 2018. 3. 30. 18:49

 

 

안개, 삶의 변방에 내리는 - 최준

 

 

때로,

삶보다 더 소중해지는

희망

그런거 생각하는 새벽이면, 내 사는 집

안개에 젖는다

 

정든 나무들과 네발 달린 짐승들과

아침밥 굶고 찾아 나선

안개의 발원지

 

속옷과 마음까지 머지않아 적시는

안개속을 오래 걸으면, 나무도

네발 달린 짐승도 살갗에 소름 돋는다

길인 곳 길 아닌 곳 모두 걸어서

나와 나무들 네발 달린 짐승들

무엇하러 집 떠났는지 혼자 있는지

깊이 모르는 안개의 깊이 만큼

햇살 속에서 곧 투명해지는 안개의 무게 만큼

삶보다 더 소중해지는 희망으로

배고프다

 

 

*시집, 너 아직 거기서, 도서출판 모모

 

 

 

 

 

 

첫사랑의 투명유리 - 최준

 

 

첫사랑의 너는

늘 거기에 있었지만, 나는

늘 그런 너를 훔쳐보고 있었지만,

소나타만 들려오던 너의 방

늘 피아노 건반만 두드리던 너의 손가락

 

물밀어 왔다 가는 세월만 흐르고

그리움만 키워가며 나이 들던

그 도시의 서켠

해뜨면 집 나서고

해지면 돌아와 투명유리를 닦고

커어튼을 내리고

 

나는 늘 그 너머에 있었지만

나는 늘 그런 너를 사랑하고 있었지만

세월이 세월을 가두고

나는 그 세월의 흐름에 갇힌 세월들의

탈출을 꿈꾸고 있었지만

 

 

 

 

*自序

 

사막다운 사막 한번 건너가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그때 비가,,,,.

나뭇잎만 뚝, 뚝, 떨어지는 늦가을의 새벽이나 그대에게 안겨드리고 떠나야 할건가. 산과 강의 깊은 수렁에 빠지며 가까스로 내 방의 문을 열면 거기 또 다른 문이,,,,.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시를 누구에게 사랑받길 원하랴. 작은 무덤같은 구두점 하나의 가을을 남겨두고 나는 춥다.

갈 길이 너무 아득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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