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욕으로 치자면 - 윤관영

마루안 2018. 3. 30. 21:06



욕으로 치자면 - 윤관영



어떤 미친 년이 저걸 애새끼라고 싸지르고는 고생했다고
미역국 처먹었겠지, 하던
무서웠던 욕이 있었다
바스러지나 물에선 살아나던 시래기가 있었다
된장에 무치면 그만인 시래기가 있었다
우거지라는 게 배추의 겉잎을 억지로 삶은 것이다만,
욕으로 치자면 이 거지 같은 놈아가 울린다
거친 겉잎을 된장에 사골에 삶아 흉내 낸 것이다만
국밥이란 말이 울리고
우거지란 말이 울려 이것은 맛을 낸다
땀내, 먹고 나면 미안하다
땀 훔치듯 고맙다
한 그릇을 다 비워야 되는 국,
국밥 같던 사람이 있었다
우, 거지 같은 놈아 소리 듣고 말았지만
그래서 고마웠다, 끝내
이어서 힘이 되는 이것
흉내도 고맙다 된장 아니면 안 되는 이것
뚝배기 아니면 안 되는 이것―


그 맛이, 그 말이 울린다
입천장 벗겨지게



*시집, 오후 세 시의 주방 편지, 시로여는세상








항문과 학문은 서술어가 같다 - 윤관영



키친 휴지를 들고는 화장실에 다녀왔습니다
언제 적인가, 하루 일을 마치고는 몸을 못 이겨, 주저앉아 오줌을 눈 적이 있습니다 엉덩이가 그렇게 시원했던 적이 없었지요 왕겨 꽃을 매단 옥수숫대 너머론 일몰이 깔리고 있었고요 닳은 물풍선 터지듯 흐른 오줌이 흙을 움켜쥔 옥수수 뿌리께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앉은 눈에 뿌리의 힘줄이 보였더랬습니다 


항문에 힘쓰고 항문을 닦았습니다만 학문을 열지는 못했네요 누이


허벅지에 힘을 뺀다는 거, 쉽지 않은 일이네요 키친 휴지를 들고는 뒷물하고 왔습니다 뒤집힌 닭똥집 같은 엉덩이가 아직은 쓸 만하답니다
세상을 향한 정면 승부는 이처럼 뒤가 문제, 이즈막 살아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은 내가 등을 돌려도 정면에 있던 걸, 누이 눈빛으로 알았네요


제 걱정일랑 마세요 누이, 부엌의 마음을 알 듯도 한 오후...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