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바람, 어제 빗나간 - 유병근

마루안 2018. 3. 30. 20:49

 

 

바람, 어제 빗나간 - 유병근


찢어지는 분수 같은 이편저편의 갈림길 같은
망설임이 있다

쓸개 없는 바람은 쓸개를 모른다 방금 찢어진 바람을 모른다 누군가 바람 속에서 나오고 누군가 바람 속으로 들어간다

찢어진 분수, 방금 또 찢어지는 회오리

어제 지나간 해거름을 달고 저무는 하늘에 달고 기운다는 말에 달고

엉거주춤한 계산머리 사이에서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긴 꽁무니와 짧은 꽁무니 사이에서

이편과 저편의 빗나간
아비규환은 아비규환을 말하고 있다


*시집, 꽃도 물빛을 낯가림한다, 작가마을

 

 

 

 

 

바바람 부딪치는 소리 - 유병근

 

 

이 구절 하나는 좀 그렇다

구절이 품고 있는 먹물 같은 거

먹물 저쪽의 어둠 같은

멀리 있는 바다가 흔들리고

방금 지나간 회오리에 흔들리고

흔들리는 바다를 지나간다

저문 날에 저무는 이 구절 하나는

지우개로 싹싹 지우기로 한다

며칠 전에도 남김없이 다 지운

빈 허우대가 된 문풍지

껍질만 남은 세상소리를 울린다

중심과 핵심의 줄글에

무엇이 어긋나고 어쩔 수 없는

어긋남을 울린다 어떤 울림은

틀니 같고 삭은 이 같고 임플란트 같다

지금부터는 사랑니 지금부터는

벌레가 기어간 충치

눈에 익은 밑줄을 친다

 

 

 

 

 

*시집을 엮으면서

 

허무도 적막도 아닌

빈 그릇 하나

그냥 요렿게 찌그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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