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무허가 이발소 - 강세환

마루안 2018. 3. 27. 19:36



무허가 이발소 - 강세환



국민학교 골목길 끝에 가면 있었던
반값만 받던 허름한 무허가 이발소
가끔 주인이 켜던 아코디언 소리
문 밖으로 솔솔 새나오던 이발소
달력에서 그저 산수화 같은 걸 오려다
흙바람 벽에다 붙인 게 고작이던
국민학교 때 이따금씩 찾아가던
간판조차 하나 없던 간이 이발소
내 또래 그 집 아들이 머리를 감겨주던
그도 나도 서로 마주보며 서먹하던
지금은 3층짜리 연립주택이 들어섰다는
내 마음속의 그 긴 골목길 끝에
햇볕도 반쯤만 들던 무허가 이발소



*시집, 상계동 11월 은행나무, 시와에세이








세월 - 강세환



마른 갈대처럼 바싹 마른 노인이
마당가 양지 바른 한쪽 끝에서
허름한 나무의자를 수선하고 있었다
한참 손질하다 여기저기 들여다보는
노인의 양미간이 퍽 인간적이다
한나절이 지나도 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그 사이 우체국 집배원이 들렀고
오동나무 잎사귀도 몇 장 떨어졌다
미풍에 흔들리는 들국화도 있었다
흔들리는 생에 나는 마음이 끌렸다
살아 있는 것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도 알맞게 불고 있었다
가시 같은 잘 마른 갈대 같은 세월이
가다 서다 잠시 멈춘 듯하다
생의 한쪽이 저리 단순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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