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한밤중에 문득 - 유용선

마루안 2018. 3. 26. 22:56



한밤중에 문득 - 유용선



다시 행복해지면,
하고 쓰려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허면 너 지금 불행한가?
다시 불행해지면,
하고 고쳐 쓰다가 또 내게 물었다.
분명 너 지금 행복한가?


오롯이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없이
경계에 서 있는 내가 보인다


행복했던 시절의 나는
그 때문에 죄스러웠는데,
억울하다, 눈치만 보다
마음껏 누리지 못하였구나.
기쁠 때 마음껏 기뻐할 수 있는
너의 맘속에는 내가 없고,
내 안에 너 있어
나는 행복할 때마다 죄스러웠다,
나와 함께 웃지 않는
너가 내 안에 있어.


불행했던 시절의 나는
그 때문에 억울했는데,
죄스럽다, 발만 동동 구르다
아무것도 건져내지 못하였구나.
슬플 때에도 내겐 손 내밀지 않는
너의 맘속에는 내가 없고,
내 안에 너 있어
나는 불행할 때마다 몹시 억울했다.
나와 함께 울지 않는
너가 내 안에 있어.


한밤중에 문득
경계에 서 있는 나를 보았다,
마음껏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시집, 개한테 물린 적이 있다, 책나무
 







들꽃 - 유용선
-구절초(九折草)



오월 단오에 다섯 마디
구월 큰잔치에 아홉 마디


구절초, 희다가 붉어진 저 산국화는
만났다는 이유만으로는
예쁠 것도 없고
잘날 것도 없는 쑥스러움


불공평한 삶의 크고 작은 마디와
그늘로 드리우는 길고 짧은 아픔들 속에
산구절초, 희고 붉은 저 야생화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커다란 의미


들린다, 내 귓가에
나지막이 부르는 노랫소리
양지에서 살아갈 날이
너무 적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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