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망둥이가 살아 있다 - 이봉환

마루안 2018. 3. 27. 20:22

 

 

망둥이가 살아 있다 - 이봉환


압해도 송공항 선착장에서 육지 사내 셋이
반짝이는 바다가 제 것인 양 낚시줄을 휙휙 끌어당긴다
그때마다 쏙쏙 바다는 몸을 빼내버리는데
사내들 줄곧 팽팽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때!
배고픈 한 마리 덥석 미끼를 물어 냅다 잡아챈다
에라, 이, 망둥이 새끼잖아
이빨로 줄을 툭 끊은 육지 사내
목구멍에 걸린 낚싯바늘도 안 빼주고
무거운 봉돌까지 매단 놈을 바다에 던져버린다
산 채 바다 깊이 수장돼버린 망둥이 새끼
뻘바닥에 처박혀
어린 눈을 끔벅일까 발버둥 칠까

하루 이틀 하고도 십 년이 흘렀는데,
그 새끼들 어찌됐을까
제 힘으로는 벗어날 도리가 없는 줄을 붙들고
펄펄 살아 날뛰던 계만이형의 어린 새끼들
동네 빈집 골방에 박혀 며칠을 끙끙대다가
비소 덩어리 삼켜버린 아래뜸 계만이형
아내는 어디 두고 새끼들만 줄에 매단 채
객지서 돌아는 왔으나
젊어 떠난 고향은 더욱 아니었으리
계만아 삼키면 안 돼 내뱉으란 말이야 이 새끼야
이웃들 달려들어 못 삼키게 목을 줄로 칭칭 동여맸지
앙다문 입을 끝내 안 벌리고 말던 계만이형
애비 목 묶은 빨랫줄에 주렁주렁 매달려
동지섣달 찬바람에 서럽던 그 새끼들이
압해바다 속에서 지금 잉잉 우는 것만 같다


*시집, 밀물결 오시듯, 실천문학사

 

 




개옻나무 종만이 - 이봉환


가을바람 불면 누구보다 먼저 수줍던
개옻나무를
아무도 눈여겨봐주지 않았지
냄새 난다고 킁킁거리고 옻오를까 봐
흠칫 경계하며 친구들 저만치 피해만 다녔지
홀어미의 가난 밑에서 겨우 구구셈이나 마치고
돈벌이 떠난 국졸이 최종 학력인 동창생 종만이
늘 간이나 보고 마음은 통 안 주는 도회 사람들 틈에서
소똥 개똥 안 가리고 닥치는 대로 굽실굽실 막일해댔지
쓰레기 매립장 척박한 땅에 악착같이 뿌리내렸지
삼십 년 바지런히 트럭 몰아 산지사방을 휩쓸고
그 사이 다복다복 이룬 잡목 숲에는 고라니 새끼들이 뛰고
아내는 한 푼도 금쪽 마냥 쟁여 모았지
오십 다 된 나이에 추석 쇠러 불쑥
고향에 나타난 개옻나무 종만이
동네 어르신들 잡수시라고
즐겁게들 먹고 노시라고
맥주와 소주 한 상자에다가 돼지 한 마리 내놓는다
연신 술을 따르며 귓불 벌게진
개옻나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네 어른들을 대접한다
모처럼 저도 고향에서 사람대접 한번 받는다
그려, 그려, 종만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었구먼
아들 딸 낳고 집 장만하고 훌륭히도 장성했구먼




# 이봉환 시인은 전남 고흥 출생으로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8년 <녹두꽃>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조선의 아이들은 푸르다>, <해창만 물바다>, <내 안에 쓰러진 억새꽃 하나>, <밀물결 오시듯>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