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꽃도 사랑이 있을 때 핀다 - 김병심

마루안 2018. 3. 26. 21:55



꽃도 사랑이 있을 때 핀다 - 김병심



얼마나 사랑에 달떠야
꽃으로 피어나는지 그때는 몰랐다
술주정에 후회하는 낮과 술주정이라도 하고 싶은 밤을 거느린 꽃


사랑이 사람을 꽃으로 둔갑시킨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다시 사람으로 돌아가려고 썼다 지우는 안간힘으로
울타리를 겨우 넘어가던 꽃
사람 하나 온몸으로 품어야 꽃이 된다는 걸


금을 밟은 죄인처럼 사랑을 쟁취하거나 버리는 것에만
답이 있다고 몸을 사리는 꽃이 아니라
접경에서 안쓰러움으로 피는 꽃이라는 걸 몰랐다


사람 하나 품기는 커녕 나 혼자만 다치지 않으려는 안간힘으로
밤낮 금이나 그으며
너와 나를 금 밖에 두고 살 때는 꽃이 아니었다는 것을 몰랐다


보고 싶어 목부터 올라가던 안간힘으로
꽃이 필 때
그때는 내가 흔들리는 줄 몰랐다
감춰도 드러난다는 걸 몰랐다



*시집, 사랑은 피고 지는 일이라 생각했다, 도서출판 각








가까운 사이 - 김병심



당신의 집까지 뛰어가는데 시간을 재 보고
버스가 타고 싶어졌다
당신의 집까지 수선화가 몇 송이 피었는지
조금은 느리게 골목마다 멈추고 싶어졌다
당신의 집까지 천둥은 몇 번 치는지
비를 맞고 싶어졌다
화재경보기를 몇 번 눌렀는지
당신의 얼굴을 몇 번 피했는지
몇 번 망설이다
돌아왔는지
고백은

거짓
참거짓
당신당신당신
온종일 내 머릿속의 초인종 소리


눈물샘과 다크서클
물웅덩이와 파인 아스팔트
매화가 피었고 유채가 피었고 목련이 피었고
당신이 왔다 눈이 멀고 귀가 먹먹하고 가슴이 아리고 잠이 없고 밥맛을 잃고
당신도 나를 사랑한다 아니다 당신은 내 것이다 아니다 당신도 아프다 안 된다
아프니아프네아프다 죽더라도 보고 싶다 죽더라도 고백하자 죽어도 못하겠다
아, 들킬까봐
당신의 이름도 못 부르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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