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이 삶 - 황학주

마루안 2018. 3. 26. 21:41



이 삶 - 황학주



이 삶 참아야 된다는
기복의 이 삶을 참을 수 없었어
그때마다 갖은 과거가 나를 쳐다보았어
반듯하지 못한 누추한 잠들을 소비하면
옷주름처럼 잡히는 아침녘의 내 모욕들
눈을 떴다 감는 것이 무참한 일이었어
봄 내내 사랑해 라고 말하면 눈물이 났어
눈물 많은 내 눈을 믿지 않는다고 그녀는 말하고
사랑한 날들이 온통 참을 수 없었어
그녀가 채운 수갑만큼 나는 단명했으면 싶었어
찌그러진 인내가 부어오르는 가슴속
청춘이 가지고 나간 죄가 아직껏 걷고 있었어
녹초가 된 서울 방면의 삶이었어
나를 집어넣은 여관방에서
이별이 배달식사를 시켜 먹었어
자진해서 살고 있는가 질문을 받았어
백날이라도 내 체온이 아픔을 구울 때
이 삶 이 삶에 대한 사랑까지 나는 갈 수 있나
나에게 물었어
새까맣게 번식한 절망을 참을 수 없었어



*시집, 갈 수 없는 쓸쓸함, 미학사








불화 - 황학주



오랜만에
집에서 간 맞는 국을 마신 뒤
내 간담이 빠져드는, 피할 수 없는
얼굴에 붙은 저 쪼글쪼글한 눈빛
옆구리에 굵은 솔 같은 슬픔을 끼고
수도 없는 새해 아침을 돌아온 저 늙고 퍼진 어머니
가슴에 낙담을 첨벙 담가둔
굴러떨어진 어머니 개인이 있고
입을 닦고 일어나는 나 개인이 추물스럽고,
내가 낯설은 자식이 되다니
나의 상처는 결국 이것이 될 것인지.






# 황학주 시 중에서 별로 주목 받지 못한 시다. 첫 번째 시, 두 번째 줄 <기복의 이 삶을 참을 수 없었어>에 기복은 起伏으로 생각 되나 두 번 읽으면서 祈福으로 슬쩍 해석했다. 두 번째 시 제목인 불화도 不和가 아닌 佛畵를 대입 시켰더니 시 전체가 다른 느낌이 든다.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祈福은 起伏이 심하고 내게 살과 피를 나눠준 어미와의 不和를 佛畵로 여겨 위로 받기도 한다. 나는 어쩌다 글자를 깨우져 이런 시를 읽게 되었을까. 벽화를 그릴 만한 동굴로 가는 길을 나는 아직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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