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대화의 일치 - 임곤택

마루안 2018. 3. 25. 20:00

 

 

대화의 일치 - 임곤택


그가 물었다, 어두운데 잘 보이지?

가로등이 빗줄기를 비추고
반짝이는 빗줄기를 맞으며 우리는 걷고 있었다

빗방울을 밀쳐내며 지붕들이 조금씩 변했다
빗소리는 벽돌 유리창 취기로부터 왔다
不和의 힘으로 저녁이 깊었다

검은 것 한 덩어리가 지붕을 건너
다음 순간으로 사라졌다
유혹과 애간장의 무늬들이 오밀조밀
빈 곳으로 밀려들었다

귓속에서 젖은 고양이들이 자랐다


어둠이 내리고 비가 내리고 들었던 팔다리를
내리고, 이런 말들로 우리는 남김없이 표현되었다

일치하고 있었다
발, 디딘 곳과 빗방울 그리고

나머지 물기와 어둠


어두운데 정말 잘 보이네, 대답했다
한 걸음씩 옮겨졌다
약동 진입 거부 탈출의 동작으로
몸의 水深이 계속 채워졌다

 

*시집, 너는 나와 모르는 저녁, 중앙일보플러스

 

 

 

 

 

 

버스 증명 - 임곤택

 

 

틀림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버스 기사의 오른쪽 발과 몇 번의 신호 대기

줄을 선다 솔직해지기 싫어서

흔들린다 인정해야 할 일이 있다

발을 디딜 때

물 흐르듯 흐르는 몸은 불가능한 곡예

소금기 하얀 어부의 손바닥

겨울은 무엇이든 잘 썩지 않는다

면목동에서 청량리 지나 성북구청에 닿는 동안

어떤 행인이 아버지를 떠오르게 했을 뿐

두꺼운 바지를 입어야 하는 겨울

두꺼운 바지를 입은 겨울

당신들아, 뭉쳐진 채로 이렇게

그대로구나

입김은 한참 동안 흩어지지 않는다

밖에 있는 그가 말하고 안에 선 그녀가 대답하는 사이

아이는 뽀드득 창을 문지른다

버스는 증명하기 어렵다

버스 기사의 동작은 거의 변하지 않고

어둡다 많다

구분할 수 없다

 

 

 

 

# 임곤택 시인은 전남 나주 출생으로 고려대 신문방송학과와 동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2004년 <불교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지상의 하루>, <너는 나와 모르는 저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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