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막의 광대뼈 - 박시우

마루안 2018. 3. 23. 21:28



사막의 광대뼈 - 박시우



그 여자는 모래였다
발목까지 빠지는 그 여자 가슴에는
이정표가 없다
가끔 길 잃은 낙타가 하룻밤을 보낼 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앗다
모래폭풍이 불면 그 여자
모래처럼 울었다
눈물은 따가웠다
조금씩 쌓인 눈물이 언덕을 만들었다
언덕에 오르면 그 여자 일생이 펼쳐졌다
광활한 신기루, 위대했던 순간은 짧았고
비굴했던 날들은 목숨처럼 길었다
그 여자 아이라인이 짙어갔다
허물어지지 않으려고
그 여자
모래의 뿌리를 허리에 감았다



*박시우 시집, 국수 삶는 저녁, 애지








국수 삶는 저녁 - 박시우



소나기 내린다
아내에게 전화 건다
수화기에서 빗소리 들린다
비가 오면 아내는 가늘어진다
빗줄기는 혼자 서 있지 못한다
누군가 곁에 있어야 걸을 수 있다
가늘어진 아내가 국수를 삶는다
빗줄기가 펄펄 끓는다
꽉 막힌 도로가 냄비 안에서 익어간다
빗물받이 홈통에서 육수가 흘러나온다
가로수 이파리들이 고명으로 뿌려진다
젓가락을 대자 불어터진 도로가 끊어진다
지친 아내가 유리창에 습자지처럼 붙는다
빗줄기가 아내의 몸을 베낀다
혓바닥이 아내를 집어삼킨다





# 박시우 시인은 1964년 서울 출생으로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9년 <실천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국수 삶는 저녁>이 첫 시집이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개 풍경 - 유계영  (0) 2018.03.23
문 - 주영헌  (0) 2018.03.23
사람의 재료 - 이병률  (0) 2018.03.23
이야기꽃, 그 꽃 - 유기택  (0) 2018.03.23
지는 동백을 보며 - 박승민  (0) 2018.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