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다시 그 봄날을 - 윤석산

마루안 2018. 3. 20. 19:39



다시 그 봄날을 - 윤석산



비 오는 한낮, 꽃그늘 아래 서고 싶다.

그리하여 쏟아지는 꽃비

온몸으로 적시고 싶다.


꽃물 그렁그렁 드는 이승의 뜰, 다시금 서성이고 싶다.



*尹錫山 시집, <밥 나이, 잠 나이>, 황금알








병상 일기 - 윤석산



천장만을 멀뚱히 바라보며 누워 있는 동안

너는 무엇을 했니. 꾸역꾸역 세상의 일들 입안으로 집어 넣으며, 바쁘다, 바쁘다 하며 지냈니.


진종일 낮달만 떴다간 이내 지고 마는,

다리가 무료해 서로 엇바꾸어도, 그래도 무료해 구부렸다가는 또 폈다 하며 견디는 시간들.

너는 무얼 하며 지내니.


어제는 촉촉히 봄비 뿌리더니, 창 밖 수양버들 늘어진 가지가지마다 푸름 돋아나고 있구나.

잠시 푸르른 시간 내게도 있었단다.


혼돈의 잠자리 깨어나 문득 바라다본 희디흰 벽면 뒤로

꼬릴 감추며 달아나는,

이제는 붙잡을 수 없는 내 일순(一瞬)의 생애들.


- 세상은

홀로 잠드는 법

오늘도 내게 가르치고 있구나.





# 멀리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픈 사람에게 봄소식 만큼 반가운 것이 또 있을까. 나이테가 늘어난 나무는 그만큼 품이 넓어지는 법, 나도 좀 더 너그러워지려고 하건만 쉽지가 않다. 원로 시인의 성숙한 시심이 봄비처럼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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