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무반주의 사랑은 쓸쓸하다 - 김이하

마루안 2018. 3. 20. 19:26

 

 

무반주의 사랑은 쓸쓸하다 - 김이하

 

 

나는 사랑을 연주하지 않겠다

가슴 깊은 곳엔 아직도 뒤틀린 악기 하나

여치 집에 갇힌 여치처럼 푸른 울음을 뜯거니

언제나 폭풍 전야 같은 바람 없는 날들

끕끕한 삶들이 짓물러 오는 장마 끝의 날들

그게 언제인데 아직도 그런 날들이

내 가슴 속에 처박혀 있는가

아아, 나는 노래할 수 없다

간간이 신경 마디에 부딪쳐 아프게 우는

무반주의 사랑은 죽음보다 싫어

또한 사랑 없는 삶은 더욱 싫어

하지만 나는 노래하지 않겠다, 장마 끝의 날들

그게 언제인데, 그게 언제인데

새 풀잎 위에 새 바람이 불어도 나는

너를 연주하지 않고는, 너를 사랑하지 않고는

내 마지막 삶을 연주하지 않겠다

가슴 깊은 곳엔 노래 잃은 악기 하나

여치 집에 갇힌 여치처럼 푸른 울음을 뜯거니

언제 폭풍 전야 같은 바람 없는 날들

그게 언제인데

 

 

*시집, 내 가슴에서 날아간 UFO, 청파사

 

 

 

 

 

 

내 가슴에서 날아간 UFO - 김이하


우리가 꽃이었을 때
그날은 아름다웠다, 구름과 햇살
우리 살포시 흔들어 주던 바람까지도
살뜰한 풍경으로 어우러져
빈 가슴에 세상 모든 슬픔을 담고
창공을 날다 비누 방울로 터지는
그런 꿈을 날려보낸, 그땐 정말
세상이 우리 것인 줄 알았지만
어디로 날아가자는 걸까
창에 비낀 공작새 같은 무지개 펴면
하늘과 너는 낮게 얼굴 묻고
나에겐 세상 끝 하나 보여 주지 않았다
내가 꽃이면 뭐할까, 캄캄해지는 바람 속
톡톡 꽃씨를 터뜨려 버린 너는
UFO가 되어 날아가고
덩그마니 처음과 같이 끝이 오고
언제 까막한 풍경이 이렇게 왔을까
풍선을 놓쳐 버린 손짓과도 같이
그 첫사랑과도 같이

 

 

 

 

*나의 변명

 

(.....)

내 시가 어렵다면 그 사람의 삶이 너무 쉬웠기 때문 아닐까. 적어도 나는 내 시를 어렵지 않게 읽는 독자를 만나고 싶다. 어렵다고 느낄 만큼 노력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서 내가 배울 것이란 아무것도 없기에. 그런 사람들과 '지랄'을 부려 보는 것도 괜찮으리. 살맛 나는 세상의 싹수를 볼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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