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우수의 파편 - 이수익

마루안 2018. 3. 18. 09:22



우수의 파편 - 이수익



흘러간 영화의 스크린에는
빗물이 흘러 내린다.
우리들 젊은 날의 감동을 안타깝게 되살리는
지나간 세월의
빗금들.


밖엔 비가 내리고 있다.
(그날도 역시 비가 내리고 있었지.)
투명한 유리창을
나비처럼 날아와 부딪쳐서 떨어지는
우수의 파편들.....


나는 지금
과거의 하늘로 눈부시게 피어 오르는
한 마리 새가 되었다.



*시집, 슬픔의 핵, 고려원








마릴린 몬로 - 이수익



이 세상
가장 진실한 연기는
죽음뿐이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고 흉내낼 수 없는
이 單生(단생)의 드라마와 만나기 위하여
그대 관능의 허벅지를 죽이기 위하여
옷을 벗고 깨끗이 누운 몬로,
(이제 나는 비로소 아름다운 여자가 되고
완전한 연기자가 되는 거예요>)
絶命(절명)의 어둠 속에서 호올로 극약을 마시고
울음과 함께 쓰러진
그대, 불꽃의
몬로.





# 1983년 6월에 초판이 나온 시집이다. 내가 겪지 못했던 시절의 흔적을 오래된 흑백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시집에서 찾아낸다. 그 시절 불온한 청년이었던 나는 시라는 것을 몰랐다. 젊다기 보다 어렸다. 재개봉 영화관을 쏘다니며 숱하게 비를 맞았던 그 후의 시절이 더 생생하다. 내가 시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가? 다가올 날보다 지난 날들이 더 그리우니 어쩔 것인가. 이것도 나만의 회고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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