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얼음 사이 - 박이화
물과 얼음 사이 그 무엇 있다
꽝꽝 얼어붙은 호수가
한순간 죽음의 장소로 변하는 것도
물과 얼음 사이
그 무엇 때문이다
사랑이 증오로 바뀌듯
열정과 냉정 사이 저 위험천만한 관계
얼어붙은 호수를 함부로 건너지 마라
겨울 호수는 건너는 곳이 아니다
그저 멀리서 산그림자처럼 바라만 보아야 한다
얼었다 녹았다
물도 되고 얼음도 되는 저 위태위태한 살얼음처럼
내게도 미웠다 그리웠다,
온종일 종잡을 수 없는 생각과 생각 사이
살얼음 같은 마음이 있다
그러니 언제 꺼질지 모를
바닥 모를 사랑은 믿지 마라
*박이화 시집, 흐드러지다, 천년의시작
새빨간 거짓말 - 박이화
먹다 보면
껍질만 남는 것이 석류다
먹으면 먹을수록 새빨간 껍질만 쌓이는
사랑하고부터 거짓말도 늘었다
생각만 해도 신트림 끄윽 괴는
그 새콤달콤한 말 들키지 않으려
석류처럼 석류꽃처럼
내 입술도 반지르르 붉어졌다
익다 보면 제풀에 단내 쩌억 풍기는
벗기다 보면 겉과 속이 한통속인
석류 한 통 다 먹고 나니 거짓말처럼
석류보다 더 많은 껍질이 쌓였다
단물 쏙 빠진 알갱이까지 시금털털 껍질로 남았다
생이 아름답다는 건 거짓말
사랑에 온통 정신 팔려
영영 지울 수 없는 얼룩만 남긴
생이 아름답다는 건 거짓말
석류보다 석류꽃보다 더 새빨간 거짓말
# 솔직하고 생동감 있는 싯구가 살아서 펄펄 뛴다. 누구나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사랑의 변주를 이렇게 자명하게 써내려간 시가 있을까. 사랑은 유치해서 더욱 하고 싶은 것,, 나도 오늘 거짓말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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