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눈물이 비눗방울이 되는 능력 - 이기영

마루안 2018. 3. 15. 22:38

 

 

눈물이 비눗방울이 되는 능력 - 이기영


울음을 가진 아름다운 자세는
눈물이라는 고결한 태도에 닿아 있다

눈물이 팽창하는 비애의 방식으로
공중을 천천히 차오르며 출렁거릴 때
울컥, 한 방울로 완성될 때

슬픔이라든가 면역에 대해서는 짧은 호흡으로 말할 수 있지만
그리운 이름은 입 안 가득 고여 입술을 떠나지 못한다

심장 저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던 첫 번째 고백,
더 단단히 둥글게 말아 올리는 자세를 고집하고

다정한 체온이 건너가지 못하는 슬픔은
저 혼자 깊어져 주저앉기도 한다

눈물이 터지기 직전까지 울음이 아니다
그래서 참는다는 말의 장력은 긴 떨림이다

주저하는 입술 혹은 수백 번의 고민 끝에
발자국 소리 없이도 떨어져 나온 이름들이
공중에서 천천히 가벼워진다

마침내,
눈물은 길게 호명된 이름으로 투명해져서 입술을 떠나고


*시집,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천년의시작

 

 

 

 

 


빛의 검법 - 이기영

 

 

오래된 감나무를 능숙하게 재단하는 빛의 방식에는

매우 친절한 결단이 있어

 

시시각각 달라지려는 줄기와 잎은

그저 암시만으로 다양한 각도에 따라 복제되기도 하지

 

할머니는 종종 감꽃 같은 한숨을 떨구곤 했지

 

그늘에서만 울 수밖에 없는

할머니는 왜 감나무 밑을 선택해야 했을까

 

태풍 없이도 주먹만 한 땡감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면

뒷마당 장독대엔 한결 듬성해진 그늘이 오고

말없이 소금물을 풀어 땡감을 우리던 할머니

 

텁텁한 감물이 수그러드는 동안

감나무 터진 살결을 타고 더 깊어진 한숨이 흘러내렸지

화농 진 자리마다 핏자국 하나 남지 않았지

 

 

 

 

*시인의 말

 

머나먼 이름의 고백이면서

너는 나라는 거리 나는 너라는 거리이면서

무수히 많은 관계들이면서

알면서 혹은 모르면서 좋으면서 또는 싫어하면서

때론 사소하거나 아니면 사소하지 않기도 하면서

비밀도 아니면서 비밀이 되기도 하면서

아직 발목이 시리면서 아직 기다리면서 잊어가면서

바람의 말이면서 새의 눈빛이면서 멀어지는 꽃잎이면서

하품이면서 꿈이기도 하면서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