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바다의 완력은 당해낼 수 없다 - 강신애

마루안 2018. 3. 15. 22:18

 

 

바다의 완력은 당해낼 수 없다 - 강신애


여관 강변장은 성당 같다
입구의 청동 인어상을 나는 마리아라고 부른다
묵주 대신 커다란 소라를 쥔 한 손은 하늘로 뻗치고
한 손은 자신의 음부를 가린
半神半魚의 마리아
헤드라이트 불빛이 터진다, 찔린 듯 경련하는 조각상
비늘이 꽃처럼 떨어진다

녹색의 개가 비늘을 뒤적거리고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취객 하나,
난산의 안개가 연인의 긴 그림자를 끌고 강변장으로 스며든다

 

나직하고 끊길 듯한 목소리로 나를 불러낸 이 누굴까
이 밤, 조각상 앞으로

내가 해 떨어진 아스팔트 길 위에서 중생대의 숲을 그리워할 때
상처를 따라가듯 아무도 모르게 성호를 그어보일 때
강변장 입구를 뭇시선으로부터 차단한 나무들이
이파리를 동그랗게 모으고 속삭인다

널 환영해, 여기부터 古典이야

늦은 영업집에서 전자오르간 소리는 적막을 포장하고
네온이 조각상의 봉긋한 가슴에 순교의 푸른 물을 들일 때
인어가 오랜 침묵에서 깨어나
가만히 소라 하나를 건넨다

나는 굶주림과 파도와 싸우다 지친 선원처럼
허겁지겁 소라에 귀를 기울인다
검고 요요한 음향의 회오리.....
바다의 완력은 당해낼 수 없다


*시집, 서랍이 있는 두 겹의 방, 창작과비평


 

 



액자 속의 방 - 강신애


대흥동 가파른 계단 끝
고흐의 해바라기처럼 걸린 방
알고 보니 시든 종이꽃이었다

키 작은 주인 여자가 방문을 열자
잡다한 생활의 때가 모자이크된 벽지와
싱크대의 퀴퀴한 냄새

비좁은 복도를 마주하고 세든 세 가구가
공동화장실을 가다 마주치면
서로 스며야 한다

하루치의 숨을 부려놓고
햇빛 한 줄기에도
보증금이 필요한 세상

모든 희망의 문짝이 떨어져나간 대문을
허둥지둥 나서니
거리의 그 많은 사람들 모두 방이 있다니!

아니야, 방은
액자 그림 속에나 있는 것
노숙. 가망없음.
그게 우리 지상의 방이야

생활정보지를 펼쳐 아홉 번째 X표를 그리면서
방 한칸 얻기 위해 걸어다닌
일생의 거리를 생각해본다

목 부러진 해바라기들이
투둑 발에 밟힌다




# 강신애 시인은 경기도 강화 출생으로 1996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서랍이 있는 두 겹의 방>, <불타는 기린>, <당신을 꺼내도 되겠습니까>가 있다.